불안의서(書)

허영심

시월의숲 2015. 1. 13. 22:56

누구나 다 자신만의 허영심을 갖고 있다. 이 허영심 덕분에 사람은 다른 이들도 자신과 유사한 영혼을 갖고 있음을 잊어버린다. 나의 허영심은 몇 페이지의 글이며, 몇 단락의 글이고, 숨길 수 없는 회의다.(132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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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대라고 해야할까. 나는 어쩐지 SNS가 발달한 요즘이 그런 것 같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허영심이 있지만, 그래서 그 허영심으로 인해 최소한의 나를 지키며 살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지나치게 증폭된 허영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점차 불행해지고 초라해진다. 나는 트위터도 하지 않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카카오톡만 하고 있는데, 이것도 친구에 의해서 반강제적으로 가입된 것이기에 처음엔 큰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아무 의미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카카오톡에 접속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의 그 놀라움이라니. 나는 왜 카카오톡에 올라온 타인의 프로필 사진에 관심을 가지는가? 왜 그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들여다 보는데 관심을 가지는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의 삶에 접속할 수 있는가? 타인의 삶에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는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돌아오는 건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좌절감뿐이다. 우리의 영혼은 원래 초라한 것이므로, 어쩌면 우리는 그 사실을 잊기 위해 허영심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 또한 페소아처럼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허영심은 몇 페이지의 글이며, 몇 단락의 글이고, 숨길 수 없는 회의다.' 라고. 내겐 이 블로그가 내 허영심의 산물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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