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시월의숲 2015. 1. 28. 23:00

내 꿈은 천둥이 치고 우박이 쏟아질 때 몸을 숨기는 우산처럼 어리석은 도피처에 불과하다. 나는 그토록 느려빠졌고, 딱하고, 몸짓은 참으로 빈약하고, 행동은 참으로 미약하다.

내가 나 자신 안으로 숨어들면 들수록, 내 모든 꿈의 소로는 불안을 향해 나를 이끈다.

 

그토록 꿈에 사로잡혀 사는 나에게조차, 꿈들이 나를 벗어나 달아나버리는 시간들이 있다. 그러면 사물들이 일순 분명해진다. 나를 둘러싼 안개가 걷힌다. 눈에 보이는 모든 모퉁이와 모서리가 내 영혼의 살갗에 상처를 낸다. 인식 가능한 모든 단단한 것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 내가 그것을 단단하다고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든 무게가 내 영혼에 무겁게 얹힌다.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다.(158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

사물들이 일순 분명해지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모든 꿈들이 나를 벗어나 달아나버리는 그 시간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짐작할 수 있을 뿐, 예측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시에 나를 찾아와 내 영혼의 살갗에 상처를 낸다. 언제인가, 나는 자다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고, 잠을 잘 수 없었으며,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주위는 온통 어둠이었다. 불을 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건 온통 어둠뿐. 어둠이 명징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물들은 어둠 속에 제 모퉁이와 모서리들을 감추고 있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들이 내 영혼의 살갗에 상처를 내는 것을,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곧 나를 공격하는 것을.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아픔이자 고통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둠 그 자체가 내 영혼에 무겁게 얹히는 것을 나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들이 나를 짓누르는 것을.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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