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꿈, 오직 그것만이

시월의숲 2015. 2. 22. 21:06

  나는 단지 꿈을 꾸었을 뿐이다. 그것이, 오직 그것만이 내 삶의 의미다. 내게 진실로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내면의 삶이다. 내 꿈의 창을 열고 거리를 내다보고 있으면 나는 나 자신마저 잊어버린다. 모든 걱정과 근심도 나를 떠나 훨훨 날아가버린다.

  오직 몽상가가 되기만을 나는 바라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삶을 이야기하면 나는 한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언제나 내가 있는 그곳이 아닌 다른 어떤 곳, 내가 될 수 없는 다른 어떤 것에 속한다고 느꼈다.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이, 설사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나에게 시적인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오직 무無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았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았다. 내가 삶에서 바란 것은 단 한 가지, 내가 감지하기 전에 삶이 내 곁을 조용히 스쳐 지나가주는 것뿐이었다. 사랑에게 내가 바란 것은 단 한 가지, 먼 꿈으로 존재하기를 멈추어달라는 기원뿐이었다. 비현실적인 내 마음속 풍경의 먼 그리움이 항상 나를 매혹시켰다. 꿈의 풍경 속 아득한 지평선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수로들은, 나머지 다른 풍경들과 비교할 때 꿈의 몽롱함으로 유난히 충만했다. 그 몽롱함 덕분에 나는 그것을 사랑할 수 있었다.(179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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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로지 무無를 사랑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한다. 삶이 그를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오직 사랑만은 먼 꿈으로 존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비현실에 매혹되고, 몽롱한 꿈의 풍경을 사랑한다. 단지 꿈만이 삶의 의미이며, 오직 몽상가가 되기만을 바란다. 그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이 그에게 시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나도 그의 삶 속에 미끄러져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혹은 내 삶도 그처럼 무無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어찌 무無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페소아처럼 사랑에게 그 어떤 것도 바랄 수 없다. 그는 사랑에게 먼 꿈으로 존재하기를 멈추어달라고 기원하였지만, 나는 그런 기원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어째서, 사랑만큼은 먼 꿈으로 존재하기를 바라지 않은 것인가. 그는 그의 온전한 삶을 비현실적인 꿈으로 물들이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왜 유독 사랑만은 그러지 않은 것인가. 내가 그를 오독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 자체가 이미 비현실적인 꿈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곧 무無이기 때문에? 혹은 몽상가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하고자 함인가? 사랑이란 꿈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