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슬픔

시월의숲 2015. 3. 24. 23:46

이 느낌을 슬픔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지금 술을 마신 상태이고, 그래서 좀 어지럽고, 몸이 무거우며,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함을 느꼈고, 그것은 이내 슬픔으로 내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그 앞에서 두서 없는 이야기를 내뱉었고,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오랫동안 중얼거리듯 말을 했다. 그것은 꼭 그에게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 자신을 위로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내가 하는 두서 없는 말에는 아랑곳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해댔고, 나는 그러한 단호함을 의식적으로 무시한 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는 최대한의 예의를 차리면서 말했지만, 나는 그 예의를 차린 말투가 오히려 나를 기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속내가 드러난 말을 애써 무시한 채 나는 일반적으로 납득할만한 혹은, 납득해주기를 바라는 말을 했지만, 그는 내가 애써 하는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파악했더라도 모르는 척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그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줄만큼의 너그러움은 가지지 못했으므로, 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 그가 내게 듣고 싶어하는 말과 내가 그에게 해 준 말의 엇갈림이 내겐 크나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는 어떤 즐거움, 혹은 삶의 희열에 대해서 말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절과도 같은 것이리라. 소통하지 못하는 것. 신뢰와 편안함이 바탕이 되지 못한 대화.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차디찬 예감. 이 모든 것이 크나큰 슬픔으로 다가와 나는 가슴이 시렸다. 너는 결코 알 수 없으리라.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사랑에 대해서 왜 내가 말하기를 꺼려하는지를. 너는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내가 느끼는 이 슬픔에 대해서. 이 죽음같은. 막막하고, 두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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