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웃는 듯 우는 듯

시월의숲 2015. 6. 15. 23:11

날씨가 조금씩 무더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젠 밤에도 예전만큼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계절은 변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관내 출장을 다녔다. 한군데가 아니라 여러 곳을 다녀야 하는 출장이었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계속 이런 출장이 예약되어 있다. 나는 태양 볕에 뜨겁게 데워진 차를 운전하며 이곳 저곳을 다녔다. 목덜미와 다리, 겨드랑이에 땀이 찼다. 나는 문득 한낮의 태양 아래 있는데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매고 다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구토가 치밀었다. 고작 반나절 돌아다닌 것 뿐인데, 속이 뒤집히다니, 내가 더위를 먹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나 자신이 무척이나 귀찮은 존재인 데다, 측은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더위에 이렇게 지치다니. 그래도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비교적 무사히 오후 일정을 끝냈다. 그런데 내가 지친 이유가 더위 때문인가? 물론 더위도 한몫했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지 않은가? 사람, 사람들 말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결국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내게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나는 억지웃음 짓고, 떠는 손을 감추지 못하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고, 알지도 못할 말을 늘어놓으며, 되지도 않을 일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에 사명감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사명감, 이라는 단어에 그만 피식 웃고 만다. 맙소사, 사명감이라니!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만 하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자신감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란 말이야! 누군가 외친다. 웃음이 나온다. 한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는 꿈을 꾸고 싶다. 꿈을 꾸고 싶다는 말은 꿈을 꿀 수 없다는 말인가? 나는 꿈이라는 말에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린다. 그것은 사명감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에 둘러싸인 채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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