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엘리펀트 송(Elephant Song)

시월의숲 2015. 6. 28. 21:22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 기대와 많이 달랐다고 해서 그 영화가 덜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자비에 돌란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엘리펀트 송>의 예고편은 나를 극장으로 이끌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예고편과 영화 소개를 통해서 형성된 내 기대감은, 영화가 정작 보여주고자 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그러니까 영화는,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르게 그리 격정적이지도, 충격적이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생각건데,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격정적인 감정의 파도를 기대하면 안된다.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저 두 주인공 간의 밀고 당기는 대화에 있으니까 말이다.(연극이 원작이라고 하니 더욱 납득이 간다.) 


내면의 상처를 숨긴채, 정신병원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마이클(자비에 돌란)과 그를 통해 실종된 동료 의사를 찾으려는 닥터 그린(브루스 그린우드)과의 대화. 그들의 대화는 마치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 과정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코끼리의 느릿한 움직임처럼 나른하게 흘러간다. 우리의 나른함을 깨워주는 것은 영화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이 초콜릿을 먹고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충분히 예측가능하기에 그리 폭발적이지는 않다. 그는 단지 자신을 가둔 정신병원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니까.


어떤 거대하고도 지적인 살인마도 아니고, 엄청난 음모와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 게임도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담당 의사에게 온 쪽지 하나를 빼돌린 것만으로도 그 의사가 실종된 것으로 오인되는 상황과 이를 이용하는 주인공의 설정은 나름 신선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물론 시대적 배경이 60년대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리고 코끼리를 통해 부각되는 주인공의 상처와 외로움, 고독이 이 영화가 진짜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다만 주인공의 고통을 드러낼 수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좀더 보여주었더라면 그에게 감정이입하기 쉬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 주인공이 자신의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는 장면만으로도 그의 아픔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영화를 다 보고나서 다시 영화 속 장면들을 천천히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내 기대와는 많이 달랐지만, 그것은 영화가 내 기대와는 다른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이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자비에 돌란의 팬이기 때문일까?) 잘못이 있다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다른 기대를 품게 만드는 예고편과 영화의 광고 카피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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