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마미

시월의숲 2015. 1. 11. 16:19

 

 

보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렸다. 안절부절 못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용암을 가슴이 품고 있는 것이 분명한 소년을 두 시간동안 보고 있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고작 두 시간 남짓이지만, 그의 엄마라면, 십 몇 년 동안 지켜보고, 안아주고, 소리 지르며 욕하고, 눈물을 흘리다가도 떠나갈 듯 웃을 수 있는 그런 엄마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짧은 시간 내 심장의 쿵쾅거림과 안절부절 못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엄마도, 아빠도, 이웃도, 친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바라보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어떤 감정 때문에 나는 때로 웃음을, 때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감정의 불꽃놀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나는 아마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러한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리라.

 

<탐 엣 더 팜>에 이어 두 번째로 본 자비에 돌란의 영화다. 두 영화의 분위기는 무척 다르지만, 모두 인상적이었고, 아름다웠으며, 눈부셨다. 둘 다 무겁고도 암울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을 다루고 있지만, <탐 엣 더 팜>은 그것을 어둡게 이야기하고 있다면, <마미>는 보다 밝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두 영화를 보고 난 결과, 아마도 감독은 노란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노랑에서 갈색 계열의 색깔들을. <탐 엣 더 팜>에서는 수확하고 난 후의 누런 옥수수대로 가득한 농장이, <마미>에서는 노랗게 단풍이 든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노란 빛의 햇살이 눈부셨으므로. 영화의 지배적인 색감은 그러했지만, 그것은 색에 대한 감독의 감각이 탁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감독들이 예고편을 인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만, 자비에 돌란만큼 예고편을 잘 만드는 감독도 없는 것 같다. 예고편이 전부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 예고편은 그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여운이 많이 남는, 그러니까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내어 만듦으로써, 예고편만을 보고도 충분히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탐 엣 더 팜>에서 탐이 농장에서 쫓기는 장면, <마미>에서 과잉행동증후군 혹은 주의력결핍장애를 지닌 스티브가 롱보드를 타는 장면과 카트를 돌리는 장면이 그러하다. 하지만 중요한 장면은 예고편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관에 가서 온전히 그 영화를 보았을 때에만 알 수 있고,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마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면비율이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화면비율 때문에 좀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은 후에 펼쳐질 어떤 마법을 위한 사전작업이었음을 그 장면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때의 짜릿한 쾌감이란! 그가 왜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라고 했는지 알겠다. 그것은 영화를 처음부터 보지 않고서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지 않고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과 소품, 풍경, 인물, 빛을 이용한 환상적인 마법을 영화에 부려놓았다. 오직 영화로서만 가능한, 자비에 돌란만의 마법을.

 

누군가는 이 영화를 자비에 돌란의 따뜻한 유화 한 점이라고 하였고, 타임지는 숨 막히는 에너지와 경이로운 온기로 가득 찬 작품이라고 하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누군가 다 해버렸다. 나는 저 두 개의 짧은 문장이 이 영화를 설명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하고도 매력적인 표현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면서 그것을 느꼈으니까. 그리고 음악. 사실 음악이 이 영화의 매력을 더욱 배가시킨다는 것을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낸 음악도 아니고, 최근 음악도 아닌, 오래 전에 인기 있었던 노래를 완벽하게 영화 속에 녹여 낸 것 또한 감독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아시스와 셀린 디온, 사라 맥라클란 등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음악은 이 영화로 인해서 재창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황에서도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결국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음을, 어디에 있더라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음을, 화려한 색채로, 눈부신 빛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그려 보이는 영화다. 우리는 그 속에 그저 뛰어 들기만 하면 된다. '감정의 불꽃놀이'와 '숨 막히는 에너지', '경이로운 온기'를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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