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으로 기록된 사도세자를 영화는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궁금했고, 그들의 연기가 궁금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새삼스럽게도 보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고, 슬펐다. 영화 속 사도세자는 무척이나 안쓰럽고 아픈 사람이었고, 울화를 견디지 못해 폭발하고야 마는 나약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영조 또한 그리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변덕과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오로지 왕으로써 살아야겠다는 의지만으로 버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 모두 아프고 슬픈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도 송강호지만, 유아인의 연기는 과히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캐릭터 자체의 힘도 있지만, 그 산산히 부서지는 연기를 유아인은 무척이나 실감나고 아프게 그려냈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역의 문근영도 어떤 단단함이 느껴지는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영화의 마지막, 노년의 모습을 한 문근영을 보는 것은 힘들었다. 사도세자가 죽고난 뒤의 이야기들은 사족처럼 느껴져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어쩌면 감독의 입장에서는 사도세자에 대한 애도를 좀 더 길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왕이 된 정조가 아버지가 남긴 부채를 들고 춤을 추면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다시 등장하는 사도세자의 모습을 보면서 벌써 그가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 있는 내가, 사도세자가 죽고 난 뒤, 그가 새삼 그립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것은 유아인의 사도가 무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며, 사도세자가 죽고 난 뒤의 긴 애도 장면들이 영화의 전체적인 힘을 빼버리는 역할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뒷부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영화관을 나오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무겁고 슬픈 영화를 보았기 때문인지, 화창하다 못해 눈이 부신 가을 하늘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설명하기 힘든 부자간의 관계와, 뒤주 속의 어둠이 현실인지, 저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현실인지 잠시 분간되지 않았다. 나는 건물 외부로 이어진 비상계단을 이용해 아래층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마치 내가 딛고 있는 계단이 금새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신중하게 한 계단, 한 계단을 확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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