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는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있는 건 내 현상뿐

시월의숲 2015. 10. 28. 01:07

침대에 누운 나는 1초 간격으로 숨을 헐떡거려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숨가뿜은 점점 더 확연하게 심해지는 중이었다. 미칠 듯이 숨을 몰아쉬며 공기를 폐 속으로 빨아들여도, 도리어 그 호흡 행위로 인해 그나마 있던 산소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가쁘게 숨을 몰아쉬게 되었고, 그럴수록 숨은 더 심하게 차올랐다. 밤이 되자 몸은 더욱 떨리고 추워져서, 옷을 모두 껴입고 숄까지 둘렀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나는 거의 마비 상태가 되어서 더이상 두렵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극심한 갈증이 밀려왔다. 나는 현기증을 느끼는 채로 다시 강으로 가서 찬 강물을 물통에 떠서 마셨다. 밤은 푸르스름했고, 엷지만 견고한 얼음의 겹이 내 발걸음과 심장의 움직임을 온통 감싸쥐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나는 얼어붙었고 어쩌면 내가 보통의 예상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190쪽, 배수아,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난다, 2015.)



*

나는 어제 저 문장들이 포함된 배수아의 책을 몇 페이지 읽었다. 그리고는 밥을 먹었다. 잠들기 전, 이상하게 몸에서 열이 나는 듯 했다. 열이 나면 나는거지 열이 나는듯 하다는 것은 또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정말이지, 몸에서 열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실제로 내가 열이 나서 혼몽한 상태에 빠져든 것인지, 열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몸이 아팠던 것인지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평소처럼 목이 아프다거나, 콧물이나 기침이 났더라면 감기의 초기증상이겠거니 생각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몸에서 열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실제로 내 몸에서 열이 난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런 기묘한 상태로 잠에 빠져들었으나, 평소대로 깊이 잠들지 못하고 몇 번씩 잠에서 깨었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나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라는 것이 내가 자기 전에 읽었던 책 속의 내용과 같았다. 말하자면 나는 작가가 몽골 유목민의 유르테에서 겪었던 병의 증상을 그대로 꿈을 통해 앓는 것이었다. 몸이 약간 붕 떠있는 듯한 혼몽함과 쉽게 잠들지 못하는 불안하고도 불규칙적인 각성, 견딜 수 없는 극심한 갈증이 잠을 방해하였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현기증을 느끼면서 물을 찾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내 정신은 아픈 것 같지 않은데, 내 몸이 아픈 것 같은 느낌,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몽골 알타이의 유르테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채 누워있는 것인가. 나는 내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했다.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걸어놓은 주술에 갑작스럽게 걸린 것처럼 기묘하게 이완되던 내 몸상태의 원인이 뭐란 말인가. 몇 가지 원인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내가 자기 전에 읽었던 책과 저녁에 먹었던 생양파였다. 작가가 몽골에서 앓았던, 소위 '알타이 병'이 책을 통해 내게 전염된 것이거나, 그날 저녁으로 먹은 유난히 얼얼하고 알싸했던 생양파의 독 때문이거나. 그 두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그 두 가지 원인이 얼토당토않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진지해 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내가 어제 느꼈던 증상이 아무런 맥락이나 사전 예고도 없으며, 열이 나는 듯 안나는 듯 하였다가, 아픈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고, 코가 막히지 않았음에도 숨을 쉬기가 어려웠으며, 결정적으로 완전히 잠들지 못하고 반각성의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기묘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증상이 밤새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5.11.16
가방 속의 책  (0) 2015.11.13
용문사  (0) 2015.10.25
몇 권의 책과 함께  (0) 2015.10.21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0) 201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