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가방 속의 책

시월의숲 2015. 11. 13. 20:20

이런 사람을 떠올려보자. 언제나 똑같은 책을, 딱히 읽지도 않으면서, 가방 속에 굳이 담아 다니는 사람. 애초에 그는 이동 중 독서라는 실질적 목적을 위해 가방에 책을 챙겼겠지만, 배갯머리 책이 누군가의 밤과 불면에 대해 그렇듯, 어떤 책은 어느새 그의 생활과 고뇌의 과묵한 목격자가 되었고, 동반자를 넘어 짐인데, 그것의 무거운 짓누름에서 생겨나는 감각 때문에, 그 감각이야말로 오로지 자기 것이기에, 기력을 거의 방탕하게 낭비하면서까지, 그는 그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는 게 아닐까. 실제 휴대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그것의 영향 아래 사는 게 아닐까. 가방 속 책. 심연 속 납추. 그에게 야외의 독서는 레저도 아니고 노동도 아니다. 들고 다니는 책 자체가 목적물인 고행적 순례다.(윤경희, '가방과 함께 사라지는 책', <Axt> 9/10월호, 15쪽)



*

작가는 자신의 지인 B를 언급하면서, 대학 시절, 그가 채영주의 <연인에게 생긴 일>이라는 책을 오랫동안 가방에 넣어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다독가고, 직업상 가방에 챙겨야 하는 책은 수시로 바뀌었을 텐데, 가볍지도 않은 특정한 책 한 권을 오래 지니고 다녔다고. 나는 그의 글을 읽고 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똑같은 책을, 딱히 읽지도 않으면서, 가방 속에 굳이 담아 다니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내 경우, '가방 속 책'은 수시로 바뀌고, 책을 늘 넣어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출퇴근을 제외한 외출 시에는 항상 가방 속에 책을 넣어다닌다. 실제로 그 책을 읽지 않을 것이 너무나 명백하더라도, 어떤 짧은 순간이나마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가방 속에 굳이 책을 담아 다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아직 위에서 언급한 열렬한 '가방 속 책' 애호가는 아니지만, 그렇게 되고 싶기는 하다. 가방 속 책이 수시로 바뀌는 것도 나쁠 건 없지만, 어떤 특정한 책을 오래 지니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든 꺼내어 조금씩 읽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설렌다. 그것은 특정한 책과 보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일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채영주의 소설이 될 수도 있고, 하루키의 소설 혹은 릴케의 시집이 될 수도 있겠다. 나라면 어떨까? 나는 어떤 책을 내 '가방 속 책'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순 없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페소아의 <불안의 서>가 되거나, 배수아의 책들이 되지 않을까. 혹은 기형도의 시집이나 로맹 가리,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도 좋겠다.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더라도, 언제나 그것의 영향 아래 살 수 있다면, 그것을 '고행적 순례'라 불러도 좋으리라.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산책  (0) 2015.11.23
  (0) 2015.11.16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는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있는 건 내 현상뿐  (0) 2015.10.28
용문사  (0) 2015.10.25
몇 권의 책과 함께  (0) 201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