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사무실의 배달원이 떠났다

시월의숲 2015. 11. 20. 22:59

  오늘 사무실의 배달원이던 그가 영영 고향으로 떠났다. 이곳 인간 집단의 한 부분으로 여겨왔고, 따라서 나 자신의 일부, 내 세계의 일부이기도 했던 그가 오늘 우리를 떠났다. 나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작별 인사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와 복도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그를 껴안았다. 그러자 그는 수줍게 마주 안았다. 내 마음의 뜨거운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솟구칠 것 같았으나, 나는 억지로 꾹 참았다.

  한번이라도 우리에게 속했던 것들은, 비록 그것이 순전한 우연에 의해 우리의 일상이나 우리의 시선에 들어왔던 것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우리의 것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의 일부로 남는다. 오늘 내가 알지 못하는 갈리시아의 고향 마을로 떠나버린 것은, 나에게는 단순한 사무실의 배달원만은 아니었다. 내 삶의 실체를 이루는 일부, 눈에 보이는 내 존재의 한 부분이었다. 오늘 나는 줄어들었다. 나는 더 이상 옛날의 내가 아니다. 사무실의 배달원이 떠났다.(481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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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는 사무실의 배달원을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어떤 이들보다 배달원을 각별하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배달원을 '나 자신의 일부'이자 '내 세계의 일부'라고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마음에서는 진심어린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그는 말한다. '한번이라도 우리에게 속했던 것들은, 비록 그것이 순전한 우연에 의해 우리의 일상이나 우리의 시선에 들어왔던 것이라 할지라도 어쨋든 우리의 것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의 일부로 남는다'고.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사무실의 직원들을 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나 자신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페소아의 배달원이 떠났듯, 이제 내게도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떠나는 시기가 곧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는 그들을 아쉬운 마음으로 껴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내 삶의 실체를 이루는 일부, 눈에 보이는 내 존재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나를 그들의 일부분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또한 그들을 내 일부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어딘가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서 있다. 내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다만 내 앞에 있는 것들을 잠시 사용할 뿐이다.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줄어든다. 페소아와는 정반대의 이유로 나는 줄어든다. 나는 더 이상 옛날의 내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매번 나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