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삶과 꿈

시월의숲 2015. 12. 19. 23:04

나는 단 한번도 깨어 있었던 적이 없다고, 나는 거의 확신한다. 내 삶이 곧 내 꿈인지, 혹은 내 꿈이 곧 삶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에게 삶과 꿈은, 서로가 서로에게 교차하고 뒤섞이며 서로가 서로의 내부로 침투하여 내 의식의 성분을 형성하는 두 요소인지도 모른다.(489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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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결국 꿈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그때의 꿈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하면서도 행복한 그런 종류의 꿈은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이, 한번도 깨지 않은 꿈처럼 현실적이지 않은채로, 알 수 없는 고통만 남기는, 그런 종류의 꿈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은 내게 너무나 어울리지 않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결정적으로 나 자신조차 영원히 알 수 없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조차 나를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런 나를 타인들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는 생각은, 내가 처한 현실을 꿈처럼 만들어버린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깨어 있었던 적이 없는 꿈 속에서, 어울리지 않는 몸짓으로,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한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아마도 나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나는 도피를 꿈꾸는가. 하지만 이것이 꿈이라면 나는 어디로 피할 수 있다는 말일까. 나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겐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타인들이 남기는 것은 알 수 없는 굴종과 비난, 차가운 시선과 가시돋힌 말들뿐. 나는 그 속에서 점차 힘을 잃어간다. 시들어간다. 현실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현실을 꿈꾼다. 다른 삶을 꿈꾼다. 지금 꾸고 있는 악몽의 세계에서 벗어나, 정의롭고도 평화로운 진짜 삶을 꿈꾼다. 나는 이 혼란스럽고도 우스운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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