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버릇

시월의숲 2015. 11. 30. 22:10

늦가을과 초겨울을 구분할 수 있겠니.


올해는 유난히도 늦은 시기까지 따뜻하다고, 계절이 예전 같지 않다고, 이상기온이니 하는 말들을 하곤 했지. 생각해보면 이상기온이라기보다 원래 가을은 그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그러니까 나는 가을을 너무나 일찍 맞이하고 또 너무나 일찍 보냈던 거야. 아직도 가을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아직 오지도 않은 겨울을 바라보며, 자꾸만 올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 아직은 겨울이 아닌데 말이야. 나는 왜 모든 것을 너무 일찍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 걸까.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너무 일찍 무언가를 결정해버리는 버릇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미리 무언가를 인정해버리는 것은 어쩌면 패배자의 심리가 아닐까. 맞서 싸우지 않고, 네, 당신이 이겼습니다, 그래, 당신 말이 맞는군요, 아, 원래 그런 거였지, 하면서 고개를 떨구는 것이. 하지만 너무 비약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어. 계절하고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까. 계절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적응의 대상이니까. 그저 우리는 계절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도 나는 너무 일찍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러다 조금의 훈풍이라도 불면 생각하겠지. 아,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거나, 따스했지, 혹은 너무 길거나 짧았어, 라고. 내 이런 버릇 아닌 버릇은 어쩌면 계절에 적응하려는 나만의 방식인지도 몰라. 아니, 아마도 그럴 거야. 그렇게 나는 11월의 마지막 날을,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어. 늘 그렇듯 나는 12월을 너무 일찍 맞이하고, 또 너무 일찍 보내게 되겠지. 그렇게 한 해를 보내게 되겠지. 그렇겠지.


늦가을과 초겨울을, 늦겨울과 초봄을 구분할 수 있겠니. 올해와 내년을 구분할 수 있겠니. 가을 속의 겨울의 길을, 겨울 속의 봄의 길을, 시간 속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그 경계 없는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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