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불확실한 숲

시월의숲 2015. 12. 26. 00:45

  아직 젊은 시절, 우리는 불분명하게 술렁이는 숲 속 높은 나무들 아래를 걸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중, 갑자기 눈앞에 개활지가 나타나면 우리는 문득 멈추어 섰다. 달빛 아래 환하게 드러난 개활지는 호수가 되었다. 나뭇가지들의 그림자가 어지러운 호수의 가장자리는 밤 자체보다 더욱 어두웠다. 거대한 숲에서 불어오는 불명확한 바람이 나무들의 가장 높은 곳을 건드리며 호흡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우리의 목소리조차 밤의 일부분이었다. 달빛의 일부분이자 숲의 일부분이었다. 우리는 마치 타인의 목소리를 듣듯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불확실한 숲이라고 하여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본능에 따라 미지의 길로 접어들며, 단단하고 차가운 달빛의 불규칙적인 어른거림과 얼룩진 그림자들 사이를 이리저리 걸어갔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며, 실제의 모든 풍경 전체가 그처럼 불가능했다.(491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

불가능한 것들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우리가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다. 불확실한 숲이라고 하여 길이 없는 것은 아니듯이. 우리가 불가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함이 아니라, 불가능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이다.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유일하게 인간적인 권능이므로. 안개 자욱한 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걷을 때, 우리는 안개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만, 볼 수 없음에 대해서, 희뿌연 안개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는 것이다.


'불안의서(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순한 응시  (0) 2016.02.01
타인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0) 2016.01.22
삶과 꿈  (0) 2015.12.19
자유  (0) 2015.12.08
사무실의 배달원이 떠났다  (0) 201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