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편혜영, 『선의 법칙』, 문학동네, 2015.

시월의숲 2015. 12. 21. 13:59



아마도 이 책을 집어 든 사람들이 다들 궁금해했을, 제목에 쓰인 '선'이 線인지 善인지, 나 또한 궁금했다. 그래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끝까지 이 소설을 읽었다. 처음에는 두 주인공인 윤세오와 신기정의 궤적(線)을 쫓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 궤적이 만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결국 線이 善이 되어버리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방점은 善이 아니라 線에 있었다. 윤세오는 악의를 품은 채로 움직이고, 신기정은 비밀을 밝히기 위해 움직인다. 그들의 만남은 결코 필연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의지가 서로를 만나게 했으며, 만남으로써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니다, 만났기 때문에 무언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만나기 위해 그들이 거쳤던 모든 것들이 그들을 달라지게 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악의를 품었건, 비의를 품었건, 그들을 추동하는 내면의 어떤 의지가 그들을 움직이게 했고, 그렇게 움직임으로써 맞닥뜨려야 했던 상황들, 사람들, 사연들이 그들의 내면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달라지게 만든 것이다. 이 소설의 방점이 善이 아니라 線에 있다고 한 건 그 때문이다. 線을 통해서 결국 善해지는 이야기니까.


내가 지금 처한 상황 때문인지, 이 소설을 읽고, 내가 가고 있는 이 線은 과연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 궁금해졌다. 지금 내가 하는 일, 내가 선택한 상황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있는지. 나는 나 자신의 의지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윤세오가 가진 악의와 분노, 신기정이 가진 자책 어린 의구처럼 확신에 찬 무언가가 내겐 없었다. 내게는 그들처럼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하고 결국 행동에 이르게 만드는 계기(윤세오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신기정에게는 동생의 죽음이)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피를 흘려야만 하는 무언가가. 나는 그들이 얼마간 부러웠다. 그것이 분노와 회한에 바탕을 두고 있더라도 어쨌든 그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벼르며 극(極)에 가 닿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을 피폐하게 하고, 스스로 살을 깎는 일이 될지라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는, 두려워하지 않으려는 절실함이, 아픔이, 하지 못한 애도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내겐 없는 그것이.

 

얼핏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간 편혜영의 소설을 생각한다면, 이번 소설의 결말에서 전해지는 뜻하지 않은 온기도 그렇고, 뒷덜미를 차갑게 하는 특유의 음습함과 섬뜩함이 다른 소설에 비해 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쩌면, 표지 그림처럼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는지도 모른다. 기존에 자신이 써왔던 스타일과는 좀 다른 느낌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생각. 이 소설은 그러한 생각에 대한 한 가지 대답처럼 보인다. 그 대답이 제대로 전달되었는가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다만 이 소설이 제목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목이 가진 매력을 내용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도 삶의 어둡고 비루한 부분을 포착하여 건조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믿음직스러우며, 아마도 그것 때문에 그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