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겨진 자들이 죽은 자들을 향해 보내는 편지 혹은 중얼거림이라고 해도 될까. 특히 표제작인 <환상의 빛>은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처럼, 읽는내내 차분한 슬픔이 서서히 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아무런 징조도 느끼지 못한채 불현듯 맞닥드려야 하는 죽음이라는 현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남편은 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살을 한 것일까? 자살하는 날까지도 가끔 들르던 찻집에서 커피를 시켜 마셨던 그였는데. 주인공인 유미코는 자신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현상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결코 들을 수 없는 대답을, 이미 사라져버린 그 사람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하는 말처럼, 정말 사람이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일까. 그것이 전차 레일 위를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혼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무엇이 그의 혼을 빠져나가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다만 그것이 인생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우리가 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게 삶이고, 삶은 그렇게 대부분 모르는 채로 마감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아무리 사랑을 하고,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사이일지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알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는 삶이 주는 축복일까 아니면 형벌일까. 이 모든 물음들, 결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으려면, 우리는 다만 침묵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한동안 (이 소설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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