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시월의숲 2015. 9. 12. 15:34

 

어쩌면,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만약 내가 소설이라고 불리울만한 무언가를 쓴다면, 바로 이런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말은, 이 소설이 결코 만만하게 보였다거나, 쉽게 읽혔기 때문은 아니다. 이 소설만의 분위기, 내용, 스타일이 어쩌면 내가 쓸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지점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라는 소설을 읽고나서도 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격렬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이 내 과거의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소설을 읽고 쓴 감상문에서, 내가 그 소설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내 삶이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그런 생각들, 어떤 소설을 읽고 아, 이건 내가 써야만 했던 글이 아닐까, 혹은 누군가 내 생각의 한 부분, 내 삶의 한 부분을 도려내어 절묘하게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소설을 접할때면 나는 어떤 부러움과 함께 경탄을 금치 못한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도 마찬가지로, 낯간지러움을 감수하고서 말한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는 소라와 나나, 나기라는 세 인물이 나온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이고 나기는 구조가 독특한 반지하방에 소라, 나나 자매와 다른 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말하지면 이웃이다. 앞서 내가 사랑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이 소설에서 사랑은 전혀 격렬하지 않다. 오로지 사랑에 격렬하여 실패한 인물은 소라와 나나의 엄마인, '애자'뿐이다. '전심전력'으로 살았지만, 남은 것은 허무뿐인 세상이라고, '애자'는 늘 말한다. 그것은 애자의 남편이자 소라와 나나의 아버지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톱니바퀴에 말려들어 상반신이 갈려 나와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좋다고 애자는 말한다. '세계란 원한으로 가득하며 그런 세계에 사는 일이란 고통스러울뿐이며, 모두가 자초해서 그런 고통을 받고 있고, 필멸, 필멸, 필멸 뿐인 세계에서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애쓸 일도 없고 발버둥을 쳐봤자 고통을 늘릴 뿐이고, 난리법적을 떨며 살다가도 어느 순간 영문을 모르고 비참하게 죽기나 하면서, 그밖엔 즐거움도 의미도 없이 즐겁다거나 의미있다고 착각하며 서서히 죽어갈 뿐이라고, 어느 쪽이든 죽고 나면 그뿐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은 '달콤하게 썩은 복숭아 같고 독이 담긴 아름다운 주문'같기도 하다. 그런 말들의 주술 속에서 살아온 소라와 나나지만, 어쩐지 그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완벽하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애자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급기야 그들은 허무 속에 몸을 내던진 애자를 요양원으로 보낸다. 애자는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소라와 나나가 애자의 깊은 허무로부터 빠져나와 구원아닌 구원을 받는 것은 바로 새로 이사간 반지하 방에서 만난 이웃인 나기와 그의 어머니 순자다. 그들도 허무와 의미없음의 세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맞으면 아프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소라와 나나, 나기의 삶은 거기서부터 새로이 시작된다. 나는 그들 세 명의 관계에 주목했다. 나나가 같은 직장동료의 아기를 임신했을 때, 그 아기를 아버지 없이 키우기로 결심했을 때, 소라와 나기가 묵묵히 나나의 결심을 받아들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무엇으로도 묶이지 않았지만, 가족보다도 더 끈끈한 무엇으로 서로를 안는다. 원래는 '소라', '나나', '나기'였을 그들이 어느순간 '소라나나나기'가 되는 것이다. 서로가 각자 하나뿐인 부족으로 태어났지만, 세상엔 하나뿐인 부족도 있는 거라며 서로를 다독이는 그들. 세상엔 하나뿐인 부족도 있지만, 하나뿐인 '소라나나나기'도 있다. 그렇게 그들은 삶을 계속해나간다.

 

격렬하지는 않지만, 버티는 것 자체가 격렬함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모두 격렬하게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한 것이라고. 끊어질듯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그들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그들은 조근조근, 속삭이듯이, 누군가에게 무심히 말을 건네듯, 있지,라며 운을 떼고는 느릿느릿 말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끊어질 때쯤, 계속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지. 죽기 전까지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며, 세계가 끝나는 순간이란 천천히 당도할 것이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

 

 

애쓰지마.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