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학동네, 2007.

시월의숲 2015. 7. 19. 21:15




처음에는 이 소설이 대학 재학중 일본군에 학병으로 징집돼 남양군도의 어느 열대 섬까지 내려갔던, 주인공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조금 더 읽다보니 주인공의 여자 친구인 정민의 자살한 삼촌 이야기 같기도 했다. 좀 더 읽으니 주인공이 독일에 가서 본 영상 속, 일자 눈썹을 지닌, 광주의 랭보 이길용 혹은 안기부의 프락치 강시우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했고, 그의 여자 친구였던 상희와 레이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다시 더 읽으니 거기에 주인공 자신의 이야기와 여자 친구인 정민의 이야기가 겹쳐지기도 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얼핏 정신없고, 두서없어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희한하게도 그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 어느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밤하늘의 별처럼 저마다의 빛을 발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캄캄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되, 길을 안내하는 북극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별과 저 별을 이었을 때에만 비로소 보이는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전갈자리, 양자리, 처녀자리 등등. 별과 별 사이를 선으로 연결하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개별적이면서도, 전혀 개별적이지 않은 이야기들.


나는 사회성 짙은 이 소설을 읽고 엉뚱하다면 엉뚱하게도(아니다. 소설 속에도 별자리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니까 전혀 엉뚱하지는 않을 것이다) 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작가는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의 개별적인 사연들을 모두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다보면 도대체 어느 누구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당황하게 되고, 하나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다시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면 그런 확신은 굳어졌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사연들을 무시하지 않고도 어떤 커다란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고(혹은 주인공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고), 그들이 가진 각각의 이야기들이 전면에 드러나며, 결국 저마다의 이야기가 출몰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없고, 모든 이야기가 중요해진다. 김연수는 책날개에 적힌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 작가로서 진심으로 바라는 일은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 얘기를 들려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다시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너는 너, 나는 나일뿐. 우리가 한 때 거대한 꿈과 이상에 몸 담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374)’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그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다. 과거가 우리를 습격하고 복수할지라도, 그래서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더라도 개의치 않겠다. 이미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다. 그 빛으로 인해 우리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으므로.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에 담겨 있다. 그 모든 존재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보듬듯, 이 소설은 기어코 그들이 서로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증명하려 한다. 그리하여 끝내 슬프지만 아름답게 빛나는 하나의 별자리를 우리에게 그려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