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배수아,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난다, 2015.

시월의숲 2015. 11. 5. 22:34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몽골 유목민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과도 비슷한 그들의 외모가 놀랍기도 했지만, 그들이 독수리를 부리는 모습, 전통 복장을 입고 축제를 벌이는 모습, 노련하게 야크떼를 이끌고 다니는 모습, 야크젖으로 만든 차를 마시는 모습, 광활하다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초원을 말을 타고 누비는 모습을 보면서는 놀라움이나 새로움보다는 그저 먼 풍경을 감상하듯 어떤 아득함을 느꼈다. 저곳은 결코 내가 갈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결코 몽골에 관한 그 어떤 것들도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 이상의 느낌을 갖지 못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우연찮게도 몽골 여행기(우리가 단순히 '여행'이라고 말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은)를 읽게 되었으며, 그것이 다름아닌 배수아에 의해서 씌여졌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좋아하게 되었고, 그 결과 당연하게도 나는 몽골이 더 이상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아득히 먼 이국의 풍경이 아니라, 마치 내가 유르테(유목민의 이동식 천막을 가리키는 투르크족 언어, 몽골어로 '게르') 안에 누워서 빛이 비치는 곳을 통해서, 비현실적으로 파란 하늘과 끝없이 이어지는 언덕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마치 작가가 '갈잔 치낙'이라는 몽골 알타이 출신 작가의 <귀향>이라는 작품을 읽고나서 막연히 그를 만나야겠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고, 급기야는 그로 인해 그의 고향인 알타이 땅으로 가게 된 것처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감정이 나에게도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몽골을 더 특별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것은 몽골에 대해서 어떤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환상이긴 하되, 척박하고, 건조하며, 바람과 돌, 뻐와 쇠로 이루어진, 몽환 속에서 앓게 되는 어떤 열병같은 것이었다. 나는 몽골이라는 어떤 꿈을 배수아를 통해 비소로 꾸게(앓게) 되었다고 해야 하리라. 그것은 몽골이, 울란바토르가, 알타이가, 투바라는 부족이 실제로는 어떤 모습이든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배수아가 꾼 꿈이며, 나는 그가 꾼 꿈을 다시 꾼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언어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꿈의 물결. 꿈과 꿈, 정신과 정신의 이어짐. 그로인한 감응. 나는 그것으로 너무나 충분하다.


책의 앞부분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이 글에 앞으로 반복해서 등장하게 될 여행이란 단어는 길이나 지도, 낯선 나라, 인상 깊고 아름다운 풍광, 새로운 문물, 혹은 새로운 자신, 두근거림이나 자유, 혹은 모험이나 떠남, 대개는 돈을 지불함으로써 현대인이 얻게 되는 어떤 종류의 비일상적 체험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마도 단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적인 꿈, 고통의 또다른 이름으로서의 꿈, 혹은 정체불명의 그리움, 슬픔과 체념으로 가득찬 발자국, 혹은 그러한 감정의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은밀하고도 슬픈 몽환과 동의어에 불과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얼굴들로 이루어진 나의 또다른 장소로 향하는 여행이자 동시에 한때 나의 육신을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돌과 쇠를 찾아가는 여행.(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