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울진 가는 길

시월의숲 2016. 2. 22. 23:16

모임이 있어서 울진에 다녀왔다. 한 칠, 팔 년 전에 직장 때문에 버스를 이용해서 울진에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산을 타고 넘어가던 그 구불구불한 길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에 가보니 도로 공사로 인해서 터널이 세 개나 뚫려 있었다. 아직 공사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있으면 터널이 더 뚫리고, 울진으로 가는 길이 많이 단축되어, 예전에 멀미가 날 정도로 굽이치던 길이 아니라 산과 산을 뚫고 난 평탄하고 곧은 도로를 따라 울진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이 단축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나(그런데 그것이 정말 좋은 일인가?), 다만 아쉬운 일은 예전에 산을 굽이치며 돌아보던 불영계곡의 그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멀미가 날 정도로 힘든 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 펼쳐지던 풍경이 더 아름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일부러 예전 길을 따라 울진을 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그 길은 예전의 영화를 잃어버리고, 어쩌면 버려진 길이 될지도 모른다. 달리 생각하면, 인간에게 더이상 시달리지 않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것인지도.(아, 이것은 얼마나 기만적인 생각인지!)


날씨 탓이었을까, 아님 기분 탓이었을까. 울진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커다란 돌로 이루어진 산들의 빛깔이 모두 누르스름했던 것은. 날씨 탓이든, 기분 탓이든, 왜 모든 사물들 중 유독 그 산들만이 누런 빛을 띄고 있었던 것인지 나는 의아했다. 오래 전에 내가 무심히 보고 지나쳤을 그 산들이, 그날따라 유별나게 의미심장하게 보인 것은 왜인지. 어딘가 헐벗은 느낌과 함께, 무너져내릴 것만 같던 위태로움과 오래된 것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긍지와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허무까지도 마치 내가 그 산과 공명하여 느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것은 내가 울진으로 가는 길에 무참히 뚫린 산의 심장 속을 세 번이나 통과했기 때문은 아닌가. 그리고 사납게 불어대던 바람 속에는, 서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하는 오래되고 힘없는, 하지만 거대한 산이 내는 신음소리가 섞여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쳐지나가는 것과 스며드는 것  (0) 2016.03.05
오래된 책  (0) 2016.02.25
감정들  (0) 2016.02.14
가련한 사람들  (0) 2016.02.08
증오는 나의 힘  (0) 2016.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