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절반 이상의 무엇

시월의숲 2016. 5. 20. 00:26

부조리가 극복 대상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사실 부조리라는 건 인간이 있는 한 언제나 발생하는 것이고, 물리적인 세계 자체는 부조리한 적이 없어요. 그냥 인간이 산다는 것 자체가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이고 어긋나는 것일 뿐이죠. 그런 어긋남, 틈 같은 것은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삶 자체나 삶의 에너지이기도 하잖아요. 모든 게 맞아떨어지면 그건 '죽음의 상태'와 비슷해지는 거죠. 비유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고. 그런 의미에서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 건 믿음보다는 의심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믿음은 조화로운 평면에서 작동하고, 의심은 복합적인 어긋남 속에서 작동하죠.(112쪽, Axt 5/6호, 이장욱 인터뷰 중에서)


*

뭐랄까. 잠시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악스트를 1년 동안 정기구독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두 달에 한 번씩 잡지를 받아들 때마다, 아, 그래, 네가 있었구나, 하는 느낌. 지금까지 받아놓은 잡지들을 아직 다 읽지도 못하고 있는데, 다시 새로운 잡지를 받아드니 뭔가 미안한 마음과 한심한 느낌(나 자신에게)이 교차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잡지이므로, 독서에 대한 지나친 의무감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그냥 손에 가는대로, 눈에 보이는대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온 악스트 5~6월분은 커버스토리부터 읽었다(아, 매번 커버스토리부터 읽긴 하는구나). 배수아가 질문하고 이장욱이 대답한 인터뷰를 읽으면서,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이장욱의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을 생각했다. 나는 아직 그의 단편소설, '절반 이상의 하루오' 밖에 읽지 못했다(혹은 어느 문학상 수상집에서 그의 다른 소설을 읽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건, 이장욱의 소설을 읽으라는 일종의 계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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