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도무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시월의숲 2016. 8. 8. 23:43

작년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작년이 어땠는지 더더욱 기억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올해의 여름만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에게 망각이란 얼마나 축복인지, 혹은 얼마나 재앙인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올해의 태양, 올해의 열대야만을 기억하겠습니다. 아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느끼겠습니다. 몸소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더위에 머리가 마비될 지경이라도, 엉덩이에 땀띠가 날 지경이라도, 온 몸이 땀으로 끈적거릴지라도,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합니다. 나는 잠을 자야하고, 일을 해야하며,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하며, 때론 걷고 때론 차를 타면서 이동을 하고, 말을 하고, 도무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이상한 감정을 추스리기도 해야합니다. 나는 순간순간을 살고, 순간순간을 느끼며, 순간순간을 망각이라는 강물에 흘려보냅니다. 이 여름도 돌아보면 어느새 저만치 흘러가 있겠지요. 책을 읽지 못하는 나날은 슬프지만, 그건 더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삶이란 순간순간을 느끼지 못한채 흘려보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감의 나날들, 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삶은 그 자체로 이미 거대한 슬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슬픈 예감인가요,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건가요. 아,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아는 것만을 말하겠습니다.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계절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지나고 있는지, 머물러 있는지 모를 더위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뜨거운 열기와 희뿌연 수증기에 대해서. 내 알 수 없는 이 감정에 대해서. 도무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이 이상한. 이것은 분명 더위 탓은 아니지만, 더위 탓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네, 그래야만 이 모든 것들이 설명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