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죽음이 우리를 잠에서 깨우게 될 것인가

시월의숲 2016. 8. 21. 12:40

언제인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사색과 관찰을 처음 시작한 이후로 나는 인간들이 진리를 모르며, 삶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하며 삶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친가지로 나는 알아차렸다. 인간과 동물의 유일한 차이는 자기기만과 삶의 무지를 고집하는 방식임을. 동물은 그들이 행하는 것을 모른다. 동물은 태어나고, 자라고, 살다가 죽는다. 사색하고 반성하고 예상하는 법도 없이. 하지만 인간이라고 해서 동물과 완전히 다르게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 모두는 똑같이 잠들어 있으며, 유일한 차이란 우리가 꾸는 꿈 그리고 꿈의 강도와 질뿐이다. 그러면 죽음이 우리를 잠에서 깨우게 될 것인가. 하지만 그 질문에 우리는 대답할 수가 없다. 만약 대답을 한다면 그것은 믿으면 갖게 된다는 믿음, 소망하면 소유하게 된다는 희망, 그리고 주면 곧 받을 것이라는 박애정신 때문일 것이다.(647~648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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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고, 과거는 되풀이되고, 또다시 고통에 휩싸인다. 하지만 우리는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그것이 전혀 잘못된 것인줄도 모르고 살아가며, 어쩌다 빨간약과 파란약이 주어질 때, 우리는 파란약을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현실이 그렇다. '인간들이 진리를 모르며, 삶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하며 삶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음을. 우리들 스스로가 동물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도 동물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당연히 동물이며, 그것은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페소아는 그것이 (약간 부정적인 의미로) 우리가 꾸는 꿈과 그 꿈의 강도와 질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긍적적인 의미의) 상상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러한 세상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기름기 흐르는 번듯한 얼굴로 민중은 개, 돼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이미 수없이 보아오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