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오늘의 나, 내일의 존재

시월의숲 2016. 10. 7. 22:33

이것은 내가 오늘 오후 믿고 있는 생각이다. 내일 아침이면 생각이 좀 달라질 수 있다. 내일 아침에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내일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모른다. 내일의 일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내일의 존재가 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믿고 있는 영원한 신조차도, 내일의 나에 대해서는 오늘과 마찬가지로 내일이 되어도 역시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오늘 나는 오직 오늘의 나이고, 내일이면 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674~675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오늘의 나와 내일의 존재 사이의 간격이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 나는 매일 오늘의 나를 완전히, 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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