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비밀

시월의숲 2016. 7. 17. 23:58

모든 욕구 가운데서도 저열함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은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고백하려는 욕구다. 스스로를 공공연하게 만들려는 영혼의 욕구다.

그렇다. 고백해라, 그러나 네가 느끼지 않는 것만을! 그렇다. 네 영혼을 비밀의 무거움에서 해방시켜라. 비밀을 털어놓아라. 네가 털어놓는 그 비밀을 한번도 가진 적이 없다면, 너는 행운아다.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네 자신을 먼저 속이도록 하라! 자기표현은 그 어떤 경우에도 실수다. 항상 의식하라. 무엇인가를 입 밖으로 꺼내 말하는 것은, 곧 너에게는 거짓말과 동의어라고.(583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

페소아는 단호히 말한다.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고백하려는 욕구가 모든 욕구 가운데서도 가장 저열함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어느 책에선가, 비밀이 생긴다는 건 어른이 된 것이라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다. 어른은, 비밀이 생기고(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비밀이 비밀이 되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려는, 고백하려는 욕구에 시달린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비밀은 스스로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또한 알려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비밀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페소아가 말한 저열함, 그 저열함의 가장 밑바닥을 가진. 그것이 바로 비밀인 것이다. 어떠한 비밀이, 우리가 모른채로 영원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에 밝혀졌을 때, 우리는 그것이 비밀이었음을 알게됨과 동시에 더이상 그것은 비밀이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페소아는 '네가 느끼지 않는 것만을' 고백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비밀의 무거움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가진 저열함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