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바야흐로 4월, 봄

시월의숲 2017. 4. 2. 21:59

주말 내내 사택에만 있었습니다. 금요일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토요일 아침엔 몸살로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밤새 끙끙 앓고 나서 겨우 일어나보니 토요일 오후더군요.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밥을 먹었습니다. 약을 먹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행히 예전에 사다놓은 감기약이 있어 약을 사러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덜었습니다. 약을 먹고 나니 다시 잠이 쏟아지더군요. 자다 깨다 반복하며 꼬박 이틀을 방에서만 보내고 있으니, 지금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엔 비가 흩뿌리고 흐렸지만, 일요일인 오늘은 무척이나 맑은 날씨여서 괜히 속상한 마음이 더했습니다. 문득 노란 산수유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머리가 아프고 몸이 마치 거대한 바위로 짓눌려있는 듯해서 어딘가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꼼짝할 수 없었던 거지요. 텔레비전을 봐도 인터넷을 해도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책 속의 활자들이 작은 바늘이 되어 내 머릿속을 찔렀습니다. 상태가 이러니 그저 멍하니 있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올릴 정신이 있는 걸 보니 조금 나은듯 합니다.


꼬박 이틀을 앓고 이제서야 겨우 정신이 좀 든 것 같아요. 이틀이라는 시간이 내게서 지나갔지만, 내게는 당연하게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야 집에서만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괜히 심술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세상은 나를 제외하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모두들 열심히, 열정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작은 골방에서 감기 몸살이나 걸려서 한숨이나 쉬고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건 부러움일까요. 유튜브에 자신의 일상을 올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예전에는 카카오스토리나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에 자신의 일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경쟁하듯 올리는 사진들에서 저는 일종의 허위의식이랄까 어떤 허망함을 느꼈거든요. 나는 그런 행위가 '나는 행복하다'고 광고하는 듯 보였고 그런 그들의 영혼이 빈한하다 느꼈습니다. 또 자신의 얼굴을 자신있게 드러낸 사진들을 올리는 것을 보면 참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 심정으로는 오히려 내가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저들은 저리도 뜨겁게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저들은 그렇게 스스로 사랑을 찾고, 쟁취하고, 누리며, 드러내고 즐깁니다. 하지만 나는 감추고, 뒷걸음질치며, 말을 아끼고, 마음 놓고 즐기지를 못합니다. 이건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걸 나는 잘 압니다. 그것은 내가 자초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잠궜기 때문이지요. 나는 친구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이 고백이 부디 자기연민이나 자기비하로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나는 그것이 그리 슬픈 일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조금씩은 그러하니까요. 하지만 때때로 찾아드는 마음의 동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듯 몸이 아픈 시기에, 마치 하이에나처럼 나를 덮칩니다. 나는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가 무너지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바람이자 절실한 기도입니다.


잔인한 계절이 왔습니다. 바야흐로 4월,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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