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안녕, 하고 말하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넬 것만 같은

시월의숲 2017. 8. 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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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온종일 흐리고 안개비 같은 것이 흩뿌렸다. 폭염의 기세가 주춤한 날, 우리는 우산을 쓰거나 들고 부석사를 올라갔는데, 올라가면 갈수록 안개가 더 심해지면서 매우 독특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가을과 겨울의 부석사는 보았지만 여름의 부석사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한여름 장마철의 부석사, 정확히 말해 안개(아니 그보다는 조금더 굵은 물의 입자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로 둘러싸인 부석사는 처음이었다. 처음이었으므로 나는 잠시 마음이 설렜다.


그렇게 흠뻑 부석사의 공기를 마시고 내려오다가 우연히 공예전시관의 토기인형들을 보게 되었다. 내게 정원이 있다면 몇 개 가져다 놓고 싶을만큼 인상적이었던, 다양한 표정의, 흙으로 빚은 도기들. 실제로 들어가보니 전시장라기보다는 판매장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는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도기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치 안녕, 하고 말하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넬 것만 같은 도기들을 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커다란 연잎과 연꽃을 보는 건 덤이었다. 전시관 입구의 작은 나무의자에 잠시 앉아 있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우리는 전시관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입을 오므리거나 펼치고 뭔가를 말할 것만 같은 토기인형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2017. 7. 29.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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