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우리가 죽을 것임을 안다. 동시에 우리 모두는 우리가 죽지 않으리라고 느낀다. 죽음이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은 어떤 욕망이나 희망으로 인해 우리 안에서 싹트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깊이 자리 잡은 거부가(…)(779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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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써있을 말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괄호 안에 들어있는 말줄임표는 원본에서 빠져있거나 해독이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책 앞부분의 일러두기에 쓰여 있었다. 하지만 삶에 해답은 없듯이, 사라진 뒷문장의 내용은 마치 그 자체로 완성된 것처럼 느껴진다. 사라졌기 때문에 비로소 그 존재를 인식하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해답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 나만의 길을 갈 수 있는, 그런 것들. 알 수 없는 뒷문장에도 불구하고 앞부분의 문장들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에 잠긴다. 우리는 우리가 죽을 것임을 아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죽지 않으리라고 느낀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죽음이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때문에 우리는 과거에도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며,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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