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내가 한 모든 일, 내가 느낀 모든 것, 내가 산 모든 삶이

시월의숲 2017. 10. 22. 21:00

그리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에게조차 나는 아련한 그리움을 느낀다.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리고 삶의 비밀이라 불리는 일종의 병 때문이다. 흔히 마주치는 거리의 평범한 얼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슬픔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나에게 오직 삶의 상징에 불과하다.

아침 9시 30분쯤 길에서 자주 마주쳤던, 더러운 각반을 찬 별 특징없는 노인은? 한번도 대꾸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나갈 때마다 귀찮게 달라붙던 절름발이 복권장수는? 담배가게 앞에서 시가를 태우던 둥근 얼굴의 혈색 좋은 노인은? 얼굴이 해쓱한 담배가게 주인은? 항상 규칙적으로 마주치곤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의 일부였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나? 내일이면 나 또한 프라타 거리에서, 도라도레스 거리에서, 판테이루스 거리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내일이면 나 또한, 생각하고 느끼는 이 영혼, 나에게는 우주 자체나 다름없는 나 자신도, 내일이면 이들 거리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그 사람이 요즘 왜 안보이는 거지?" 하고 문득 떠올릴 것이다. 내가 한 모든 일, 내가 느낀 모든 것, 내가 산 모든 삶은, 어느 도시의 어느 거리를 매일 지나다니던 행인 하나가 줄어든 사건으로 요약되고 말 것이다.(787~788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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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긴 싫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인정하고 말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진실이 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내 '도시의 어느 거리를 매일 지나다니던 행인 하나가 줄어든 사건'으로 요약되고 말 운명이라는 사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어쩌면 슬퍼할 필요도 없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 앞에서, 망연자실해지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삶이란 원래 그렇게 쓸쓸한 거라는 말일까. 내가 한 모든 일, 내가 느낀 모든 것, 내가 산 모든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