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모르는 사람들

시월의숲 2017. 10. 1. 15:32

모르는 사람들의 부고가 부쩍 많이 들려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 태어나겠지요. 하지만 지금 내게 자주 들리는 소식은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가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기라도 하는 건가요? 혹은 가을은 떠나기 좋은 계절이기라도 한 것인가요? 어쩐지 그런 생각마저 드는 요즘입니다. 아, 그리고 지금껏 내가 거쳐온 지역 소속 국회의원의 추석 인사 문자도 받았습니다. 내가 그 지역을 떠나온지도 거의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문자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날아오곤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추석만 되면 문자 보내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의 하나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잘하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알려주지도 않은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내서 문자를 보내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주말과 한글날 등 추석 앞 뒤로 공휴일이 끼어서 정말 황금연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지요. 거의 10일 정도를 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 작년 말부터 올해의 달력을 넘겨본 사람들은 지금쯤 해외에 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을테니까요. 언제부터인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전혀 어렵다거나 심정적으로 먼 일이 아니게된 이후로 조금의 연휴라도 생기게 되면 너도나도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심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일단 내 주위의 사람들만해도 평소에 심심찮게 해외에 나가기도 하고, 이번 연휴에도 역시나 해외에 나갔으니 말입니다. 나는 그것이 좀 부럽기도 하고,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어쨌거나 여행을 가기 위해 하는 그 모든 귀찮은 일(그들은 귀찮아하지 않겠지만)을 다 해낸다는 사실이 일단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뜻이 있고, 부지런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목적을 달성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나는 뭘하고 있나고요? 나는 그저 집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늦잠을 자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텔레비전을 좀 보다가, 읽다 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참, 어제는 일터에 나가 일을 좀 하다가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추석 때 요리할 식재료들을 좀 샀습니다. 추석 때 큰집에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모이니까 약간의 음식 정도는 해야되거든요. 이번에는 잡채와 닭볶음탕과 몇 가지 밑반찬들을 할 생각입니다. 지난 주에 벌초할 때 사놓은 명태포로 북어국도 끓이고, 된장찌개는 기본이고요, 홀토마토 만들어놓은게 있으니 스파게티를 해도 되겠지요. 아, 고모가 좋아하는 청경채버섯볶음도 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명색이 추석명절이니 부침개 몇 개 정도는 있어야겠기에 부추와 알배추를 샀습니다. 뭐 이 정도면 우리 가족들이 먹기에는 얼추 되지 싶습니다. 부족하면 몇 끼는 사먹으면 되니까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가족들이 모이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우리가 모이는 이유는 일단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니까요. 물론 어딘가 나가서 둘러보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이야기가 주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벌초하기 위해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모였는데, 이번에는 뭐랄까, 예전과는 다른 분위가 느껴졌어요.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는 얼핏 예전과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보였지만 그 속에는 미묘하게 부드러운 기류가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예전에는 당일로 벌초를 하고 서로 쫓기듯 흩어졌던 것이 올해는 하룻밤을 자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서로에 대한 원망과 독한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진 것일까요? 아니면 마음 저 깊은 곳에 묻고 더 이상 꺼내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 것일까요. 누군가 그렇게 하자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나는 처음 느껴본 그 부드러운 분위기에 적응이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우리는 서로에게 하는 말을 최대한 아끼고,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철이 드는 것일까요. 다 큰 어른이라도 철들지 않은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세월이 우리들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는 시간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대체적으로 시간을 원망하지만, 때로 시간이 우리가 가진 격하고 아픈 감정들을 좀 말랑하게 만들어 서로에게 덜 상처를 주게 만든다면 어찌 시간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그건 시간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그러한 작은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누군가에게 부고로 전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작은 변화들 속에서 살아갈테니까요. 그게 슬픈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 않습니까. 모르는 사람의 부고처럼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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