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뮤지컬 헤드윅을 보았을 때 자꾸만 오래 전에 본 영화 헤드윅이 생각났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영화를 보지 않은채로 뮤지컬을 보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뮤지컬의 압도적인 현장감과 인상적인 음악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을텐데. 이건 흔치 않는 일이기도 했다. 보통은 리메이크(라고 해야하나?)가 원작보다 더 나은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순히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 경우, 뮤지컬보다는 영화가 더 인상적이었다. 뮤지컬을 보는 내내 영화 속 주인공의 아픔과 뮤지컬 속 주인공의 아픔이 비교되면서(당연하게도 둘이 같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헤드윅의 아픔이 더 절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영화가 헤드윅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삶의 굴곡들을 그 시절의 인물들과 배경 속에서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다면, 뮤지컬은 장르의 특성 상 한 무대에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헤드윅의 과거 삶의 이력들을 단순히 본인의 독백 혹은 모노드라마처럼 그려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영화와 뮤지컬이라는 장르 혹은 매체의 특성 상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느꼈던 충격(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이 단지 어느 것을 먼저 보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었을까? 아무튼 영화 헤드윅의 강렬한 인상에 사로잡혀 있던(그것이 오래전에 보았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뮤지컬은 (의외로) 보다 강렬하다거나 색다른 인상을 전해주지는 못했다. 물론 오만석의 연기와 노래는 훌륭했지만 말이다. 오만석의 헤드윅을 보고나니 유연석의 헤드윅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어떤 이는 유연석의 헤드윅도 무척 좋았다고 하던데, 나는 어쩐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긴, 유연석의 공연을 본 사람에게 내가 유연석의 헤드윅이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고 하니까, 자신은 오만석의 헤드윅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다른 어떤 뮤지컬보다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헤드윅이라는 개성 강한 역할을 어떻게 연기할지 무척 궁금해지는 뮤지컬이 아닐까? 영화가 헤드윅의 아픔을 느끼는데,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의 폭발을 보여주는데 더 낫지 않은가, 라고 말하긴 했지만, 영화는 영화대로, 뮤지컬은 뮤지컬대로 무척 멋진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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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보고 나서, 우리(고모와 나)는 극 중 이츠학이 여장남자인가, 남장여자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당연히 이츠학이 업소에서 드랙퀸으로 활동하고 있다가 헤드윅에게 미국으로 데려가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여장을 포기하게 되는 '남자'라고 말했고, 고모는 반대로 남장을 하는 '여자'라고 말했다. 나는 고모가 '드랙퀸'이 무엇인지 알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굳이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지는 않았다. 고모가 잘못 이해한 이유는 아마도 이츠학을 맡은 배우가 실제로는 여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극의 마지막에 헤드윅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가발을 벗을 때, 그것을 건네받은 이가 바로 이츠학이었으며, 이츠학은 그 가발을 쓰고 다시 예전의 자신(여장을 하던 드랙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오해한 것도 있었다. 나는 고모에게 영화 속 이츠학을 연기한 배우가 남성이었다고 말했는데, 다시 찾아보니 영화에서도 뮤지컬과 같이 여성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소소한 오해와 이해가 나로서는 무척 재미있었다. 그것이 '헤드윅'이라는 작품이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는데 일조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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