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덩케르크

시월의숲 2017. 7. 20. 22:40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를 보았다. 오후에 출장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일이 끝나는 바람에 시간이 남아서 영화를 보기로 한 것이다. <덩케르크>는 보는 내내 가슴에 육중한 무언가를 올려놓은 듯 무겁게 가라앉는 영화였다. 비록 영화 속 전투기가 상공을 날아다니며 적기를 격추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전쟁 상황이라는 특수성 때문이겠지만). 이 영화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 수세에 몰린 사람들,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 오로지 하나의 희망만을 공통으로 품은 사람들이 나온다. 집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가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결국 집에 가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듀나는 이 영화를 비겁함과 용감함의 이야기라고도 했는데 그 말도 맞다.

 

배를 폭격한다던지 전투기를 격추하는 등의 장면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 느껴졌다. 무척이나 단순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드는 연출 또한 좋았다. 생각건데 그러한 감정을 배가시킨 것은(그래서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어떤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 속에 전반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감정이 서서히 고조되거나 이완되는 지점에 음악(이라기보다는 효과음이라고 해야할까?)이 참으로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었기에 어쩌면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예고편만 보았을 때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지는 않겠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니,,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적군이 탄 전투기만 보여줄 뿐이고 독일군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총알이 날아오긴 하는데 누구로부터 날아오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 속 그러한 시점이 적군들에게 둘러싸인 아군의 절박한 심리를 더욱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지금의 내 심정처럼 느껴졌다. 많이 죽고, 다쳤으며, 수많은 죽음을 보았고, 누군가를 죽이기도 했을 그들의 마음속 상처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조국의 땅을 밟은 그들이 처음 듣는 말처럼, 살아있으니까 그걸로 되었다고. 나또한 이곳에서 꿋꿋이 견딜 거라고.. 그러다 보면 그들처럼 나도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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