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진부함

시월의숲 2018. 3. 18. 16:20

무언가 혹은 어딘가 정지해 있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 혹은 어딘가를 열심히 하거나 가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그것이 하거나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 기분이. 이건 마치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데도 불구하고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도 같지 않을까. 요즘은 그렇게 시간의 흐름 혹은 정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많다. 아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느낀다. 불가해한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일하면서 부딪히는 모든 것들, 사람들, 상황들, 감정들이 내가 평소 생각하고 그것이 옳다고 느끼는 것들과는 다르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새삼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내 사춘기는 이제 시작되는 것일까. 아님 오춘기로 접어든다고 해야하는 것일까. 모든 것들이 불합리하고, 불가해하며, 부조리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러한 채로 돌아간다. 마치 그게 자연스럽다는 듯이. 나는 형체가 없는 모순적인 것들로 인해 고통받는다. 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만을 뼈져리게 느낄 뿐이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들수록 고통만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약한 자들을 짓밟고 업신여기며, 오로지 강한 자들에게만 고개를 숙인다. 나는 이렇듯 진부한 폭력 속에서 역시 진부한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무언가 혹은 어딘가 정지해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은. 세상은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속한 작은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 진부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진부한 세상을 진부함에 물든 채 진부하게 살다가 진부하게 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