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벌레

시월의숲 2018. 3. 1. 16:51

무슨 말인지 또렷이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와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남자인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은 누워있는 나를 마치 비난하듯 말을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비난한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그들은 장애인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인지 그게 왜 나를 비난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지 모른채 나는 무척 난감하고 황당하며 불쾌한 기분에 휩싸인다. 왜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이 두 명씩이나 내 방에 들어와 큰소리로 장애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나를 비난하고 있는지 의아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아니 비난의 느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 그들에게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한다. 나는 누워있고,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내지 못한다. 마치 무언가에 결박되어 있는 것만 같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아주 강한 끈에 묶여 있는 것만 같다. 나는 그저 희미한 의식으로만 저들의 소리를, 비난의 어조를 느낄 수 있다. 나는 분명 내 방에 있었는데,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인가?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벌레로 변한 것인가? 벌레로 변한 나를 나만 알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신음한다. 고통당한다.


그때 누군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면 영원히 고통받았을지도 모른다. 이건 분명 엄살이거나 과대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불쾌함과 고통은 영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급격한 잠이 쏟아져서 쓰러지듯 방에 누웠다.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나왔고, 내가 알지 못하거나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비난했고,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기이한 상황에서 나를 구해준 건 현실에서의 전화벨이었다. 전화를 받고 현실로 돌아온 나는 그것이 잠깐 잠든 사이 꾼 꿈이라는 걸 알았고, 꿈 속의 상황이 너무나도 불쾌하고 고통스러워 한동안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영원과도 같았던 찰나의 고통. 나는 그것이 요즘 나를 압박하고 있는 업무의 스트레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 사방에서 밀려들듯 오는 전화로 일상 업무가 마비되고, 여러가지를 신경써야 하는 일들의 폭주로 지금 내가 제 정신이 아닌 것이다. 오늘은 그 와중에 단비처럼 내려온 휴일이었지만, 아침부터 나를 찾는 전화 때문에 집에 있지만 마치 사무실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간헐적으로 오는 전화는 마치 언제 쿵쾅거릴지 모르는 층간소음처럼 나를 옥죄었다. 그래서 더욱 잠으로 빠져들었는지도 모르는데, 그 잠 속에서도 비난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전화를 많이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평생 받아야 할 전화를 근래 며칠 동안 다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전화 때문에 일이 안될 정도니까. 그래서 매일 야근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늘 찝찝하고 불쾌하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를 다독이지만, 그 기분, 불쾌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는 그 기분은 떨쳐낼 수가 없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시련인 것일까. 시련은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밀려드는 것인가.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다른 시련이 내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어디에도 출구는 없는 것 같다. 막막한 기분.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덧 삼월이 되었다. 봄은 오고 있건만, 내 인생의 봄은 이미 지나가 버렸거나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차라리 벌레라도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