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시월의숲 2018. 7. 29. 23:34

연일 폭염의 기세가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가, 오늘은 태풍 종다리의 영향 때문인지 기온이 몇 도 내려가서 더위가 좀 꺾인 듯 느껴졌다. 물론 여전히 무더웠지만 바람이 제법 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체감온도는 낮았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무얼 해야만 하는지. 꼭 무얼 해야만 하는 것인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게 가장 현명한 일이 아닐런지. 뭐 이런저런 생각으로 주말을 보냈다. 너무 더위서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더위와 상관없이 평소에도 그리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말이다. 늦게까지 잠을 자다가 더워서 깨고, 에어컨을 틀고 오후 반나절을 보내고,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본다음 기타를 좀 치고, 책을 읽다가, 인터넷을 하고 잠을 잔다. 이게 주말동안 내가 한 일의 전부다. 아, 오늘 저녁은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과 함께 용궁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폭염의 기세가 좀 누그러졌다고 느낀 이유도 오늘 저녁을 먹기 위해 집밖을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밖의 기온이 어떻고, 바람이 어땠는지 알 길이 없었겠지.


요 며칠 한 정치인의 자살로 인해 충격에 휩싸였다. 개인적으로 그의 촌철살인 어록을 무척 좋아했던 나로서는 그의 죽음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의 자살의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나라의 진보정치에 큰 별이 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끊이지 않는 조문행렬이 그걸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 와중에 거대야당의 전대표였던 사람은 미국으로 가서 페이스북 정치와는 한동안 담을 쌓고 살겠다고 해놓고 다시 말도 안되는 말을 늘어놓아 안그래도 더워서 짜증나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혈압을 더 높여주었다. 그의 망언은 아무래도 불치병이지 싶다. 예전에 그의 망언 퍼레이드를 보고 한 정치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그 분의 뚫린 입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그래, 뚫린 입이고, 우리 모두에게는 말할 자유, 표현의 자유가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건 공해가 아닐까. 본인은 물론 무척이나 생각해서, 나름 촌철살인이라 생각하며 내뱉었겠지만.


아, 내가 무슨 정치 이야기를 이렇게 하고 있는지. 더워서 정신이 없나보다. 한 정치인의 죽음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심정. 죽음을 선택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어떻게 다른가. 분명 어떤 이는 죽어도 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리라. 그런 자들은 보란 듯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자들을 조롱하고, 경멸하며, 어리석다 하겠지. 한가지 확실한 건, 뻔뻔한 자들은 결코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고뇌했으며, 뻔뻔하지 않았고, 양심적이었다. 그런 정치인을 잃는다는 건 우리나라의 큰 손실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아, 정치 이야기는 그만 해야겠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 우리는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결혼, 연애 이야기? 저번주 금요일 저녁에 지인들과 술을 마신 후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왔다. 차 안에서 기사는 내게 넉살있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었다. 직장이 어디며, 몇 살이며, 결혼은 했으며, 결혼을 안했다면 애인은 있는지, 혹은 애인이 없다면 왜 사귀지 않는지. 사람들의 관심사는 더 거기서 거기다. 사람들은 만나면 우선 나이를 묻고, 결혼 유무를 묻고, 미혼이라 밝히면 애인은 있는지, 왜 애인을 사귀지 않는지 묻는다. 정말 지독하리만치 식상하고도 무례한 물음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그들이 초면에 만난 사람에게 묻는 그러한 질문들이 무례한 일이라는 걸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마치 내 형이라도 되는 듯, 아버지라도 되는 듯, 개인 신상을 묻고 또 묻는다. 그건 나와 함께 집으로 왔던 그 대리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내게 묻는다. 결혼을 왜 안하는지, 애인은 왜 없는지, 왜 사귈 생각을 하지 않는지, 왜 젊은 시절을 낭비하고만 있는지. 내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애인을 사귀어야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인가? 그건 도대체 무슨 기준인가? 애인이 없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인생을 헛되이 살고만 있는 것인가?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치 그것이 삶의 정해진 룰이라도 되는 양 가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당신의 삶이 있고, 나는 내 삶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면 되고, 나는 내 삶을 살면 된다. 물론 서로의 삶에 대해 말할 순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의 삶을 재단하고, 함부로 단정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한 것은 아니다. 도대체 왜 자신과 다른 삶에 대해서 그냥 놔두질 않는가? 그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라고? 이런, 당신은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군요. 당신은 당신의 삶이나 위하면 됩니다. 내 삶은 그냥 내가 알아서 할께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속으로만 외친다. 물론 사람들이 내게 해주는 말들은 진정으로 나를 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호의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떤가?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당신이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남들이 한다고 해서 다 해야하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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