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는 모두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시월의숲 2019. 5. 6. 22:21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불편하기도 하고, 마음 한 켠이 아프기도 하면서, 상처를 입은 것처럼 마음이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이건 내 마음이기도 하고 어쩌면 고모와 동생의 마음이기도 할 터였다. 어린이날이 낀 연휴 내내 우리들은 상처를 입고도 상처를 받지 않은듯 연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수없이 가족 모임을 가졌지만 오늘처럼 마음이 불편했던 적은 아마도 없었으리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발단은 물론 사소한 대화에서부터였지만, 그건 하나의 사소한 발화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오랜시간 축적된 서로간의 오해와 기대가 점차 커지다 지금에서야 터진 것일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모두 상처를 받기만 했을 뿐, 정작 준 사람은 없었다. 도대체 누가 상처를 준 것인가? 상처를 준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상처를 받을 수 있는가? 나는 잠시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상처를 주었고, 모두 상처를 받았다. 우리의 혼란은 자신이 준 상처는 기억나지 않고 받은 상처만 기억했기 때문이다. 내 뜻은 결코 그게 아니었다고, 그렇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항변을 해도 이미 상대방이 입은 상처는 쉬 나아지지 않았다. 그로인해 나또한 상처를 받았다. 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자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치유의 말들이 필요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인가? 나는 점차 두려워진다. 동생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들의 좁은 마음은 더욱 심해질 거라고. 동생은 나와는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했지만, 그 말도 일리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계속 이렇게 혼자 있는 동안에,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동안에는 나도 내 마음을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어질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 것이다. 동생은 그걸 간파한 것일까? 고모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동생은 보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들의 우려가 사실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고, 실제로는 그런 우려를 하는 우리들이 더 큰 우려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에 동생과의 대화에서 나는 사실 좀 놀랐고,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돌연 슬픔과 걱정에 사로잡혔다. 우리가 결코 생각해보지 않은 종류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슬픔이 나를 잡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지배한 삼 일 간의 연휴동안에는 오월의 찬란하던 햇살도, 연둣빛 잎사귀도, 분홍빛의 연산홍도, 시원하던 바람도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아주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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