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월영야행

시월의숲 2019. 7. 28. 22:10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월영야행'이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축제의 일정을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행사를 하는 줄 몰랐으나, 마침 주말에 동생 내외와 고모가 여름 휴가를 왔고, 우연히 홍보 현수막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자연스레 축제에 가게 되었다. 무척 더웠던, 아니 엄청나게 더웠던 작년 여름의 축제가 생각난다. 밤에 열리는 축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더위가 식지 않아서 지친 개처럼 입을 벌린 채 혓바닥을 내밀고 덥다를 연신 내뱉으며 월령교 일대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더웠지만, 그 더위도 여름에 열리는 축제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령교에 세워놓은 조명들이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공연이 좋았다. 우리는 포크콘서트와 국악 공연을 보았고, 창극 형태의 스토리와 해설자가 있는 독특한 형태의 공연을 보았다. 한여름밤에 월령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국악 공연은 다른 여느 축제와는 다른 차별점을 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처럼 보였다. 그 기억을 올해 두 번째로 가게 된 축제에서 떠올리게 된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축제 기간도 길어지고, 아이들이 즐길만한 물놀이 시설도 보강되어 더 다채로워보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새로 제작된 '월영야행'이라는 로고가 박힌 부채를 들고 햇빛도 가리고, 땀도 식히면서 월령교 일대를 돌아다녔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함께 축제에 오게 되었는데, 오전에 대구에 아버지 안과 진료를 마치고 오는 길에 들른 것이었다. 도착하니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 그때는 아직 본격적인 축제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축제는 저녁 여섯 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사이 월령교 일대는 밤에 시작될 축제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저 잠시 들렀다 갈 생각이었으나, 아버지가 저녁에 하는 공연을 보고 가자고 해서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장마철이라 날이 흐려서 뜨거운 태양은 피할 수 있었으나 습도가 높아서 몸이 끈적거렸다. 우리는 주차를 하고 월령교를 건너 강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저녁 여섯 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우리는 벤치에 앉아 쉬었다. 나는 그 짧은 시간동안 잠이 들었다. 불과 몇 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꽤 오랫동안 잠을 잔 것처럼 생각되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축제장 일대를 돌아다녔는데,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석빙고와 선성현 객사 등을 둘러보기도 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한 삼십 분 전에는 푸드트럭이 있는 곳으로 가서 꼬치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우리는 마치 공연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공연을 기다렸다. 드디어 여섯 시가 되었으나 사회자는 삼십 분 늦게 시작한다는 멘트를 했다. 나는 약간 실망을 하였으나 지금까지도 기다렸으니 삼십 분 더 기다린다고 뭐 어떤가 싶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돌 위에 앉아 공연을 보았다. 처음에는 국악단의 공연이었는데, 가야금과 대금의 합주, 해금 연주 등이었다. 한여름밤에 듣는 가야금과 대금, 해금의 선율은 무척 아름다웠다. 뭐랄까, 그 시간과 공간에 딱 맞는 연주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월영야행'이라는 축제의 타이틀과 무척 어울리는 공연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이 공연을 보기 위해서 오래 기다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들었던 국악 공연의 아련함이 올해 지금 이 자리에 나를 있게 한 것이다. 특히 대금 연주는 떠들썩하고 어수선한 야외무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금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그 공간에는 대금 소리와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멀리 보이는 월령교와 강위로 내려앉은 물안개는 대금 공연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순간, 연주자의 연주가 훌륭했는가의 여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에서 폭죽이 터졌다. 오늘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벤트였다. 그때 우리는 강 위에 임시로 만들어놓은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갑작스레 터지는 폭죽에 놀랐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짙은 안개가 모든 윤곽을 지우고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으나 밤하늘의 폭죽은 전혀 흐리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서서 폭죽이 다 터지는 걸 보고서야 우리는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르긴 몰라도 폭죽이 터지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나절 동안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기도 했고, 낮에 벤치에 앉아서 잠들었던 순간처럼 무척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달큰하면서도 지치는, 여름 특유의 들뜸과 피곤이 한데 어우러졌기 때문이리라. 이상하지, 올해의 여름 휴가는 이것으로 끝인 것만 같다. 그 축제로 인해 이미 올해 여름의 맛을 보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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