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어, 하다가

시월의숲 2019. 8. 22. 23:39

그러니까 이번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연가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 딱히 여름 휴가를 갈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이 여름에, 남들이 다 쉬는 주말이 아닌 평일에 쉬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유일한 낙인 잠을 푹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쩌면 그 마음이 제일 컸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쉴 때는 정말 원없고 한없이 깊은 잠에 빠져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토요일부터 시작해서 화요일까지 총 4일을 쉬었는데 잠은 딱 절반인 이틀 정도 잔 것 같다. 4일 동안 잠을 잔 시간을 합해보면 말이다. 그게 많이 잔 건지 적게 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잠이 안올 때까지 잤으니까 원없이 잤다고 할 수 있겠지.


잠은 많이 잔 것 같지만, 잠의 질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잠의 양이 아니라 잠의 질일 테니까. 많이 잔 것과 잘 잔 것은 분명 다르지 않은가? 물론 잠을 많이 잔 것을 두고 잘 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푹, 편안히 자야하는데,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하긴 많이 잔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잠은 잘수록 늘고, 지나치게 많이 자면 몸이 더 축 쳐저서 오히려 피곤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휴가 동안 나는 그리 피로하지는 않았으니 잘 잔 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주말에 잠을 몰아서 자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도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게 잠은 필수요(모든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내게는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피로를 푸는 방법이자, 삶의 유일한 낙(!)인 것이다.(아, 물론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제외하고.)


휴가 기간 동안 잠만 잔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최근에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 - 홉스 앤 쇼>를 보았으며, 미장원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혼자 중국집에 가서 냉우동을 먹고, 스타벅스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도 읽었다. 그게 전부다. 휴가 기간동안에는 시간조차 느릿느릿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한껏 여유롭게 내게 주어진 시간을 보냈다. 아이스크림 막대에 붙은 개미떼처럼, 사람들로 가득한 바다나 여름축제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적어도 이번 휴가기간만큼은 더위와 사람들로 인해 몸살을 앓기 싫었다.(물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다. 나또한 때로 그런 것들을 그리워하며, 급기야 즐기기까지 하니까!) 나는 그저 나만을 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오로지 나만의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어느 정도는 그 바람대로 된 것 같아서 기쁘다.


어느새 팔 월도 막바지에 치닫고 있다. 내일이 처서다. 영원할 것 같던 이 여름도 어어, 하다가 영원히 보내게 되겠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연의 순환이 때론 무섭다가도 때로는 안심이 된다. 그렇게 이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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