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자책과 회의

시월의숲 2019. 9. 6. 23:21

어쩌면 구월의 둘째 날 내가 했던 말이 실제로 실현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날씨마저 장마의 영향으로 이번 주 내내 흐리고 비가 조금씩 내렸다. 퇴근 길에 다른 생각을 하다가 두 번이나 길을 잘못들었다. 그 길을 나는 오래도록 다녔는데도 말이다. 오늘은 꽤 신경이 쓰이고 걱정했던 업무의 마지막 날이었다. 내 짧은 역량이, 내 얄팍한 판단이, 내 부주의하고 성급한 생각이 나를 뼈저리게 아프게 한 날이었다. 나는 날씨만큼이나 우울하고 슬펐다. 슬퍼서 누가 지나가면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을 와락 터뜨릴 것만 같았다. 술을 왕창 마시고 싶기도 했다. 이런 기분을 느껴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아니, 처음이던가? 나는 자주 난감한 기분에 빠지곤 하는데, 오늘은 그런 기분과는 조금 다른, 나 자신에 대한 책망과 업무에 대한 회의가 뒤범벅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누군갈 붙잡고 오래도록 하소연을 하고 싶기도 했고, 누군가 나에게 내 잘못에 대해서 화를 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누군가의 격려도, 누군가의 위로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내 속으로 깊이 참잠하는, 아주 무거운 돌에 발이 묶인채 바닥모를 저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고, 내가 나에게 말하고 나자, 쓰디쓴 웃음이 피식 흘러나왔다. 정말 그런가. 나는 괜찮아 질 수 있을까. 지금은 한없는 슬픔이 내 온몸과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데. 아니,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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