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안만나면 되지 않겠어요?

시월의숲 2019. 9. 16. 00:21

갑자기 화가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나는 종종  B와 이야기를 할 때 극도로 흥분을 하고 하는데, B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그렇게 밖에 말을 할 수 없으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목소리가 커지고 만다. B의 억측과 편견, 아집과 독선이 내게 깊은 저항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안에 대해서 나와 똑같은 의견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 생각과 다른 것에 흥미를 느끼기까지 한다. 하지만 내가 B가 주장하는 의견과는 다른 의견을 개진했을 때 B가 보이는 반응은 냉소적인 비웃음이거나 고집스런 자기 주장을 반복하는 것 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B는 개를 식용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나라의 문화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다른 나라가(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고 말한다. 또 우리가 식용으로 먹는 개와 애완견으로 기르는 개는 종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이 개를 먹지 말라고 말하는 것또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내가 반대 의견을 말하면 B는 애완견과 먹는 개는 엄연히 다르다는 말만을 되풀이한채 도무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B는 왜 개가 하나의 생명으로써 종에 상관없이 소중한 것인지, 반려견이라는 의미가 도대체 왜 생겨난 것인지, 동물보호단체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그런 사람들의 입장 또한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냐며 말하면 B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화를 낸다.


다른 여러가지 사안들에 대해서도 대체로 이런 식이다. 도무지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말만을 고집한 채 타인의 말에는 귀를 닫는다. 내가 화가 나는 건 B의 그런 자세 때문만은 아니다. B의 그런 고집을 자신의 주장이 강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더라도 그것을 말할 때의 태도를 용납하기 힘들 때가 많다. B는 상당히 화를 내면서 나무라듯이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바로 그것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준다. 그것은 정상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B의 화를 참아내며 나 자신의 의견을 차분히 개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고도의 정신수양을 필요로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B와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내 또한 목소리가 따라서 높아지게 된다. 이런 식이면 대화를 하기 참으로 힘들지 않겠는가?


그런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나는 B와 대화를 할 때 되도록 민감한 주제는 피하려고 하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민감한 주제(특히 정치 이야기)로 대화를 해야할 때면 최소한도로 내 의견을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는다. B의 의견을 들어주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수양이 덜 된 사람인지라, B와 대화를 할 때면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몇 번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분명히 그건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자꾸 일방적인 이야기만을 하고 있으니 나도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다. 나또한 B처럼 아집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 맞는 것처럼, 그것이 정의이며, 올바른 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의 대화가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느 한 면만을 보며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쩌면 서로 닮았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늘 잘 되지 않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나는 그것이 늘 의문이고,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누군가는 말하리라. 그럼 그런 고집쟁이와는 아예 만나지 않거나 만나더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글쎄...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긴 하다. B는 다름아닌 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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