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병문안

시월의숲 2019. 9. 7. 21:36

오늘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며칠 전 친구가 뇌경색 증상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렇게 젊은 나이에 뇌경색이 올 수 있는지 의아했고, 걱정스러웠다. 소식을 들으니 그리 심각한 증상은 아니고 약물치료로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오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병원에 가서 친구를 보니, 겉모습만으로는 그리 아파보이지는 않았는데, 왼쪽 손에 힘이 없고, 잘 안움직여진다고 했다. 나는 그가 병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 웃을 일이 아닌데,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친구도 그런 나를 보고 따라 웃었다. 평소에 혈압이 높았는데도 관리를 하지 않고 술과 담배를 한 탓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정말 관리를 해야한다고 심각하게 말했고, 술과 담배도 이 기회에 끊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담배를 피웠다.


우리들은 빵집에서 커피를 시켜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와 마셨다. 태풍의 영향인지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불었으나 다행히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병원에 오는 길에 낮게 깔린 검은 구름 아래로 검은 새들이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 모습과 요즘에 내가 처한 상황이 묘하게 겹쳐져 마음이 무거웠으나, 입원한 친구에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목소리를 키워 밝은 모습을 연기했다. 친구는 집에 있는 것보다는 입원해 있으니 더 낫다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다. 시간이 지나자 검은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내리쬐었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었으나 걷힌 구름 사이로 내민 청명한 하늘이 새삼 반가웠다.


우리들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말들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병원에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과 그들을 방문한 사람들, 그리고 간호사들이 수시로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 언뜻 병원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장례식장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그 팻말을 보니, 지하에는 죽은 사람들이, 지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있겠구나 하는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 선명한 선이 어쩐지 아찔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선명하기만 한 것일까? 병원이란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던가?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이 어쩐지 믿기지 않았다.


병원 옆으로는 아파트가 한창 지어지고 있었다. 아파트가 다 지어지면 누군가는 저 창문으로 병원을 내려다 보겠지. 우리들 중 누군가는 아프고, 언젠가는 아플 예정이며, 그렇게 아프다가 정말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인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인가? 며칠이 지나면 친구는 퇴원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삶을 이어가게 되겠지. 하지만 입원하기 전의 삶과 퇴원 후의 삶은 미묘하게 다르지 않을까? 우리 각자에게 남은 삶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우리가 우스개소리로 한 말, 살만큼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머릿속에서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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