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누가 누구를

시월의숲 2019. 9. 29. 16:31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있는가? 내가 감히 누군가를 위로할 자격이나 있는가? 아니, 그건 질투심이었을까?


내가 어떻게 하다가 그의 블로그에 방문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연히 어떤 단어를 검색하다가 흘러흘러 그의 블로그에 방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때 검색했던 그 '단어'는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그의 블로그에 약간의 흥미와 매력을 느꼈고, 그래서 그의 블로그를 즐겨찾기 한 뒤 가끔씩 잊어버릴만하면 들어가 그동안 그가 써놓은 글을 읽고는 했다. 그는 소설 쓰기에 흥미가 있는듯 보였고, 블로그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글들이 소설이었지만 사실 내가 그 소설을 다 읽는 것은 역부족이었다.(흥미가 없었다기 보다는 모니터로 장문의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끈기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소설의 앞부분을 스치듯 읽는 것이 다였지만, 그가 가끔씩 올리는 짧막한 에세이는 즐겨 읽었다. 이상한 일은 그의 글을 읽는 일에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이지만 지속적으로 방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산책을 하다가 문득 생각나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는 것처럼 내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자 몸에 벤 습관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방문한 그 블로그에는 오랜만에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그 글의 요지는 이전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잘 읽히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는데(사진을 넣는다든지 하는 등), 요즘엔 그런 글들에 흥미도 없고, 그런 글을 쓰고 싶지도 않으며 글의 외부적인 것들(그는 그것을 '치장'이라고 표현했다)보다는 글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글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어나갔는데, 결정적으로 글의 말미에 그는 이런 문장을 썼다. '이렇게 잘 읽히지 않는 글이라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읽어주고 있다고 믿는 편이 좋다' 라고. 나는 그 문장을 읽고 가만 있을 수 없었다. 답글을 달고자 생각한 건 처음이라고, 잊어버릴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 너의 글을 읽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나같은 사람도 있다고, 그건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나는 답글을 달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무엇엔가 홀린듯 자동반사적으로 답글을 쓴 뒤 저장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이상한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삭제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답글을 달았던 것이다.


답글을 쓰고 난 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블로그를 잊을만하면 방문하는 이유와 내가 그의 글에 답글을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갑자기 궁금했다. 아무 생각없이 일을 저지르고 뒤늦게 그 행동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어딘가 이상하고 무언가 뒤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왜 그런 것일까? 그건 어떤 위로 같은 것이었을까? 하지만 누구를 향한 위로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글이 읽히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했지만, 그 안타까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그보다는 내가 더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내 블로그에 들어와 내 글을 읽는 사람이 그의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보다 더 적지 않은가(이런 비교는 참으로 낯뜨겁고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런 비교는 온당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그는 나보다 자신의 글이 대중들에게 좀 더 읽히기를 원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실제로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한 '작가'였던 것이다. 작가가 책을 내는 이유는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래서 이건 질투심이란 말인가? 그보다 내가 더 위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얼마나 우습고 치사한 일인가. 나는 그의 글에 답글을 달고 난 뒤 느꼈던 여러가지 감정들이 이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가 블로그에 쓴 이야기와 내가 평소 생각했던 것들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이렇게 잘 읽히지 않는 글이라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읽어주고 있다고 믿는 편이 좋다' 라는 말을 나또한 하고 싶었던 거구나, 그에게서 다름아닌 '나 자신'을 보았구나, 그에게 보내는 답글이 실은 나 자신에게 보내는 답글이었구나, 그러므로 그에게 보내는 위로가 실은 나에게 하는 위로였구나 하는. 하지만 작가도 뭣도 아닌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가 다른 사람들이 읽어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일정 부분 나 자신을 위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아무도 보지 않는 노트에 글을 적는 것은 아니기에 나를 모르는 누군가 읽을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는, 공개된 일기장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니까 이건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누군가 읽든 읽지 않든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것은 일차적으로 나만을 위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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