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잊혀졌거나, 잊혀지는 중이거나, 잊혀질 예정인

시월의숲 2020. 7. 24.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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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읽으면서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 제일 마지막 쓴 글이 2017년 11월이니까 그로부터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다. 그 두툼한 책을 오래도록 천천히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발췌하여,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적은 것인데, 지금 읽어보니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기만 하다. 페소아의 글도 그렇고, 내 생각도 그렇고.

 

내가 쓴 문장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존재 자체가 이미 망각', '우리는 잊혀졌거나, 잊혀지는 중이거나, 잊혀질 예정이다. 우리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라는 문장. 내 머릿속에서 나온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문장이 무척이나 생경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런 문장을 썼던가? 의아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때는 아마도 페소아의 문장들에 스며있는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과 태도에 흠뻑 취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작가의 어조를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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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7월 들어 지금까지 오직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 기억밖에 없다. 아직까지도 업무는 손에 잡히지 않고,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 일 외에 다른 것에 대한 간절함이 커진다. 휴가는 엄두도 못내고 있지만, 최소한 야근이라도 좀 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시기일수록 일도 열심히 하고, 노는 것도 열심히 해야 할텐데, 일을 열심히 하자니 놀 시간이 없고, 놀자니 일할 시간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좀 더 열심히 일해서 놀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것일까? 암튼 일과 생활의 균형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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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은, 우리는 결국 잊혀질 존재라는 것인가? 그게 지금 내 상황과 일맥상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종일 일만하고 집에와서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는 생활이 좀 억울해서, 결국 아무 말이나 쓰고 싶었다는 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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