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言의 毒

시월의숲 2021. 2. 3. 23:30

이상한 날들을 지나고 있다. 어딘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통증이 느껴지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지 알 수 없고, 간헐적으로 미미하게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어딘가 아픈가보다 생각되는 순간 통증은 사라진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알 수 없는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요즘은 자주 울컥거리거나, 말수가 줄어들고, 그래서 결국 어떤 슬픔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내 삶이, 내가 살아온 삶의 태도가, 방식이, 사고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건 무엇 때문일까. 왜 나는 이렇게 슬픈 걸까. 슬퍼지는 걸까. 책을 읽기도 힘들고, 어떤 생각에 몰두할 힘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앉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일도 하기 싫고, 사람들을 만나는 건 더더욱 싫다. 말에는 생각보다 강한 힘이 내포되어 있는걸까. 독한 말을 하는 것과 독한 말을 듣는 것은 결국 둘다 말의 독에 중독되는 일일까. 중독되어 시름시름 앓게 되는 것일까. 

 

이상한 날들을 지나고 있다. 이상한 시간과 이상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사람들의 겉과 속을 알 수 없고, 사람들의 본심을 알기란 더더욱 힘들다. 우리가 대하는 것은 서로의 껍데기가 아닌가.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결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결국 인간 관계라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닌가. 참으로 이상한 날들, 이상한 시간들, 이상한 공간들, 이상한 사람들, 그 속에 나 또한 이상한 자세로, 이상한 표정으로, 이상하게 앉아 있다. 연기 아닌 연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 보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하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나온 광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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