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피곤이라는 병

시월의숲 2021. 2. 27. 00:50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피곤이다. 피곤의 질이 달라진 느낌이랄까. 이게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이라면 무척 슬픈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몸이 어딘가 좋지 않은 거라면 병원에 가봐야 할 일이 아닌가. 집안일과 업무 등이 겹쳐져서 무척 바쁘고 피곤한 날들을 보냈다. 피곤이란 늘 그림자처럼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이었지만, 지금껏 내가 알던 피곤과는 다른, 공격적이고 신랄한 피곤이었다. 나는 그 피곤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기력했고, 암울했고, 슬펐다. 몸의 피곤과 정신의 피곤이 나를 지배해서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해야했으며(그래서 과거와 달리 무척 힘들었으며), 소모적인 인간관계로 인해 고통을 당해야 했다. 어쩌면 내가 느낀 강렬한 피곤은 일보다는 그동안 내가 느껴야했던 어떤 감정 상태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상태가 될 수도 있음을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 나는 그동안 그 신호를 너무 외면하고 살았던가. 새해가 두 달이나 지나고 있다. 봄이 오고 있건만, 이 봄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계절이 바뀌는 이 시기에 나는 피곤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중인가. 내 몸과 마음도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인가. 자꾸만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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