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고백

시월의숲 2021. 3. 1. 00:42

뭐랄까, 점차 사람들이 하는 말의 의중을 알 수 없어진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의 진심을 점차 파악하기 힘들다. 예전에는 그저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을 아무런 의심이나 계산 없이 받아들였는데, 이제는 그게 저 사람의 진심일까 의심하게 된다. 점차 사람들과의 대화가 어려워지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하고 싶은 말이 있기나 한건지, 대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너무나 진실과 상반되는 말들에 시달려왔다. 상대방의 의중을, 말로 표현되지 않는, 그 너머에 혹은 그 이면에 있는 것들까지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독심술사가 아니다. 나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사람들의 진심을 읽어낼 줄 아는 초능력자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이 내뱉는 표면적인 말과 그 이면에 있는 말과의 괴리가 나는 때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 그것을 읽어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내게 크나큰 고통이자 절망이다. 교묘하게 비꼬는 말들, 상대방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말들, 은유를 가장한 비열한 말들,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는 말들, 의심과 장난의 말들, 가시 돋힌 말들, 독을 품고 있는 저주의 말들, 그런 말들에 나는 오염되었다. 병들었다.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지?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왜 너는 나를 자꾸 오해하는 거지? 나는 네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그래서 당연히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너는 왜 네가 이야기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몰라준다고만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당신이 나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나를 위해 비꼬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말을 해주면 좋을텐데. 오늘도 아버지에게 불쑥 화를 내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내게 서운한 이야기를 하면서 장난처럼 가시돋힌 말을 하였는데, 나는 그 말을 듣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화를 내었는데, 그런 내 눈치를 보는 듯한 아버지를 보니 그 모습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이것이 고통의 연쇄작용인걸까. 사회생활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는 어째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힘들어만 지는지. 어쩌면 나는 애초에 인간관계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인 것이다(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는 '나'다). 나는 지금 어떤 고백을 하고 있는 걸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나오는 주인공 요조처럼.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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