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정경화 - 바흐: 샤콘느 Bach: Chaconne from Partita No 2 in d minor, BWV1004

시월의숲 2021. 4. 29.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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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운전하는 동안에는 늘 USB에 담아놓은 음악을 듣는다. 거기에는 가요에서부터 시작해서, 팝송, 클래식, 재즈, 락, 댄스, 알앤비 등 국적이나 장르 여하를 불문하고 다양한 곡들이 담겨 있다. 차에서 듣는 음악은 그날그날의 날씨에 따라서 혹은 악셀을 밟는 세기에 따라서 명징하게 들릴 때도 있고 거의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특히 클래식이 나오는 경우에는 음량이 현저히 줄어든 듯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볼륨을 높여서 듣는 경우가 많다. 물론 차에서 듣는 음악이란 그저 운전하기 무료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어떤 날씨와 시간, 그날의 기분 등에 따라서 익히 알고 있던 음악이라도 새롭게 들리는 경우가 있고, 내 귀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음악이 뚜벅뚜벅 내 가슴속으로 들어와 존재감을 드러낼 때도 있다. 그중에 들을 때마다 귀를 기울이게 하는 곡이 있는데 그게 바흐의 무반주 연주곡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무반주 첼로곡을 좋아하지만(먼저 접한 것도 첼로곡이었다), 내 USB에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들어있다. 오래전에 담아 놓은 데다 많은 곡들이 실려 있어서 음악의 순서도 뒤죽박죽으로 플레이가 되는데, 어느 순간 솔로 바이올린 연주가 스피커를 타고 들려올 때면 무의식적으로 볼륨을 높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 이런 음악이 있었지! 하면서. 

 

내 집 작은 선반장에는 CD가 꼽혀 있고, 그 중에 요한나 마르치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음반이 있다. 나는 오래전에 이 음반을 사놓고 몇 번 듣지 않았다. 어제는 퇴근하면서 들었던 바흐의 음악이 가슴에 남아 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CD플레이어를 켜고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아름다운 연주에도 불구하고 퇴근을 하면서 차에서 짧게 들었던 연주의 감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반주 첼로곡도 그렇고, 무반주 바이올린 연주곡도 정색을 하고 들으면 귀에 착 감기지 않다가, 우연히 어느 장소, 어느 순간, 어느 기분, 어느 온도에 맞춰진, 아주 짧은 순간 들었던 음악의 감흥이 더 오래도록 남아 있는 건 무슨 요량인 걸까. 요한나 마르치의 연주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바흐의 음악은 정색하고 긴 시간 앉아서 듣기보다는 문득 어디선가 들리는 선율에 사로잡히듯 그렇게 우연히 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오래전 우연히 어느 사이트를 들어갔다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던 첼로의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서, 화면의 활자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듣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던 그 순간처럼. 그것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이었다는 걸 알고 바로 피에르 푸르니에의 음반을 구입했었다. 그 음반은 물론 훌륭하지만, 지금도 나는 어느 순간 무심결에 흘러나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에 더욱 흥분한다. 그게 누구의 연주인지 알지 못한 채로 그저 그 선율만이 오롯이 내 귀에 들어와 나를 관통하여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마치 그곳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격렬한 감정은 그것이 분명 존재했었음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마치 지난 밤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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