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물의 시간

시월의숲 2021. 5. 9. 23:30

물의 시간들.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요즘 내 삶,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그 단어가 떠오른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나는 왜 요즘 나를 통과해 흐르고 있는 이 시간에 대해서 그런 단어가 떠오른 것인가. 그건 결코 지금의 내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무리 없으며 무난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무언가, 어딘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런 간섭이나 방해 없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삶이다. 하지만 아무런 탈 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는 시간 속에서도, 불쑥불쑥 떠오르는 불가해한 기억으로 인해 내 삶은 방해받고 만다. 알 수 없는 불편함과 불안이 그 순간 나를 잡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는다. 한 순간 꼼짝없이 그것에 사로잡혀버리고 마는 나약함. 무방비한 상태. 물의 시간들이란 어쩌면 그렇게 순식간에 휩쓸려버리고 마는 거대한 힘을 가진 것이 물이기 때문에 떠올랐던 단어였을까.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몇 번의 휴일을 맞이했다. 어린이 날이 지나갔고, 곧이어 어버이 날을 낀 주말이 이어졌다. 어린이 날에는 동생과 조카들이 왔다갔고, 주말에는 고모와 사촌동생들이 왔다 갔다. 나는 익숙한 감정들을 느끼며 그들을 맞이했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카페를 가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했다. 오월의 첫째 주였고, 황사로 먼 곳이 뿌옇게 보이긴 했으나 화창한 날씨였고, 햇빛 속을 걸을 때면 살짝 더운 듯 느껴졌으나 그늘에 있으면 금세 시원해졌다. 가족들과 만나 이야기를 할 때는 오로지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로 그들을 대했고, 삶의 불가해성이랄지, 부조리 따위의 단어들은 생각나지 않았고, 생각날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헤어지고, 혼자 남아있는 지금, 이상하게도 인간의 유한성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 함께 본 풍경들, 기억나지 않는 대화와 웃음들이 과거의 어느 한순간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 영원하지 않고, 영원할 수 없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 이 얼마나 우습고 터무니없이 거창한 생각인가? 이건 얼마 전에 읽은 장 그르니에의 <섬> 때문인 것일까. 아직도 나는 그 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혹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

어떤 친구가 편지하기를, 한 달 동안의 즐거운 여행 끝에 시에나에 당도하여 오후 2시에 자신에게 배정된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열린 덧문 사이로 나무들, 하늘, 포도밭, 성당 등이 소용돌이치는 저 거대한 공간이―그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시에나시가 굽어보는 저 절묘한 들판이―보이자 그는 마치 어떤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그의 방은 하나의 깜깜한 점에 불과했다.)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나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찬미의 눈물이 아니라 '무력함'의 눈물이었다. 그는 깨달았다.(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의 동요 이상으로 정신의 동요였음이 분명하니까.) 그는 자기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는 수 없이 감당하게 마련인 미천한 삶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일순간에 그의 염원들의, 그의 생각들의, 그의 마음의 무(無)가 현실이 되어 있음을 본 것이다. 모든 것이 거기에 주어져 있었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 가질 수 없었다. 그 한계점에서 그는 지금까지는 그저 잠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별, 그러면서도 오직 그만이 원했던 그 이별이 결정적인 것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식했다고 말했다.(94~95쪽, 장 그르니에, '행운의 섬들' 중에서)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경처럼,  (0) 2021.06.10
아버지와 함께  (0) 2021.05.22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0) 2021.04.23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  (0) 2021.04.11
사람이 하는 일  (0) 2021.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