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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처음, 이 영화가 그리 끌리지는 않았는데, 그건 블랙 위도우가 매력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최후가 어땠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미 그의 죽음을 보았다. 그건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나름 완벽한 결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너무나 완벽해서 인위적인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깊은 죄의식을 가져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를 너무나도 손쉽게 결정지어 놓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건 나만의 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언맨의 죽음만큼이나 블랙 위도우의 죽음 또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은 계속 남았다. <엔드 게임>에서 블랙 위도우는 그렇게 슬퍼할 틈도 없이 불쑥 사라져 버렸으니.
그래서였을까? 이번 <블랙 위도우>는 나타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단독 영화다. 어쩌면 마블은 블랙 위도우에게 가족이라는 걸 만들어주고 싶어서 이 영화를 기획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녀의 죽음이 그리 외롭고 고독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앞서 <엔드 게임>에서 느꼈던,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그녀의 죽음에 대한 늦은 애도가 바로 이 영화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드라마는 덜컹거리고, 볼거리인 액션은 밋밋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동생인 엘레나와 탈주하는 장면이나, 헬리콥터를 타고 레드 가디언을 구하는 장면, 영화의 후반부에 상공에서 추락하면서 벌어지는 장면은 스팩터클하지만, 어쩐지 실감이 나질 않고 타격감도 적은데다 블랙 위도우만이 할 수 있는 은밀한 첩보물 같은 액션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블랙 위도우는 캡틴 아메리카나 헐크가 아니지 않은가? 블랙 위도우만이 할 수 있는 액션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영화 속 액션이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쉽지만, 블랙 위도우를 떠나보내는 애도의 의미에서 영화는 나름 역할을 한 것 같다. 어쨌든 그녀에게는 혈육의 관계를 뛰어넘는 가족이란 것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값진 거니까.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그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을테니까. 그것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쉽지만, 뭐 그럭저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