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는 모두 외롭고 고독하다, 그래서

시월의숲 2021. 9. 28. 21:29

얼마 전에 '로맨스 스캠'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로맨스 스캠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인터넷에 이렇게 나온다. 

 

"로맨스 스캠이란 연애를 뜻하는 ‘로맨스(romance)’와 신용 사기를 뜻하는 ‘스캠(scam)’이 합쳐진 말로, SNS 등으로 친분을 쌓은 뒤 돈을 갈취해 내는 사기 기법을 뜻한다. SNS 등을 통해 준수한 외모를 가진 타인의 프로필 사진을 도용하거나, 유명인 등으로 신분을 위장해 이성에게 접근해 애정을 표현하며 친분을 쌓은 뒤 거액을 뜯어내는 식이다."(에듀윌 시사상식)

 

그러니까 SNS를 통해 사진으로만(그것이 실제 본인의 사진인지 아닌지 확인하지도 못한 채) 만나고, 그가 하는 이야기로만(자신의 실제 직업이 미군 장교인지 의사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채로) 이야기하면서 친분을 쌓고 급기야는 연인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시간을 들여 친분을 쌓은 후 상대방이 의심을 가지지 않을 만한 증거물들을 보내면서 갖가지 그럴듯한 이유로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그런 전문적인 사기단까지 존재한다고 하고, 피해액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나는 피해액이 수억 원 대에 이른다는 기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이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해자가 정신이 나갔다고들 말했다. 도대체 무얼 믿고 수억 원을 순순히 내어준다는 말인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도용했을지도 모르는 사진과 거짓일지도 모르는 몇 마디 말 때문에? 나도 처음에는 피해자의 어리석음에 개탄했지만, 이내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국 우리들은 모두 애정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것.

 

그런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건 상대의 거짓말을 믿게 하는 치명적인 무언가가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오랜 시간을 들인 애정 어린 위로와 다독거림에 우리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는 터무니없는 거짓에 치밀하게 계산된 말일지라도, 따뜻함으로 위장된 언어들이 누군가의 결핍과 만나면 충분히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고독하며, 그래서 애정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므로. 또한 사랑이라는 건 결코 이성으로만 제어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애정을 가장한 사기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그 관계가 '온라인' 혹은 '비대면'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가 미덕이라지만, 적어도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런 거리두기는 곤란한 일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란 서로의 체온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대면'이 상당히 중요한 일일 테니까. 하지만 실제로 만난다고 해서 또 다른 사기에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 사진과 메시지로만 보고 판단하는 실수에서는 최소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돈!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돈을 요구하게 된다면 그건 한번쯤 의심해봐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결핍된 존재들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